의사들의 감정 거부로 재판 지연, 기각되는 사례 발생
신현호 변협 인권위원장 "의견서에 근거 명시도 없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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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가 의료감정과 재판절차의 공정성·객관성·신속성 세 가지 측면을 확보해달라고 관계기관에 촉구했습니다.

인권위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진료기록 및 신체 등 의료감정의 경우 감정 자체가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며 “의료감정의 절차를 관리하는 법원은 감정의 적정성 관련 통계자료를 외부에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 종합병원 등 감정기관은 감정지연·감정거부·고액 감정료청구 등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료감정 지연문제는 결국 의료영역에서의 ‘법치주의 위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인권위는 “의료감정에서의 문제는 국민 재판청구권의 심각한 제약이나 침해로 이어진다”며 “의료 영역에서 국민들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면서 적지 않은 재판비용만을 부담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법원의 감정회신 지연·반송 통계 공개 ▲절차적 신속성 확보 ▲의료감정인 교육과정 마련 ▲편파감정 삼가 등을 꼽았습니다.

특히 인권위는 “현행 의사 상임전문심리위원에 의한 재판개입은 자기재판금지라는 소송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률상 근거도 불분명한 제도”라며 해당 제도 폐지를 강조했습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1년 상임전문심리위원이 지정된 사건 152건 중 의견서를 제출한 경우는 15건에 불과합니다. 또한 당사자는 상임전문심리위원 의견에 대해 탄핵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과정에서 의사 출신 상임감정위원과 현직 의사 비상임감정위원이 편향적인 감정서 결론을 미리 정해 두고, 법조인·시민단체 관계자 등 다른 위원 설득하는 등 공정성 측면에서 비판이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임감정위원은 비의료인 출신으로 임용하고 감정부에 회의록 작성 의무를 부과해 개인적 판단이 개입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인권위는 “현행 의료감정 현황을 보면 그 필요성 자체를 고민하게 하는 상황”이라며 “대한의사협회는 법원과 함께 의료감정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신현호 변협 인권위원장 "감정 거부로 기각되는 경우도... 의견서에 레퍼런스나 근거 명시도 없어"

이와 관련해 변협 인권위원회 위원장 신현호 변호사는 의사 측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과 근거제시 의무가 없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신 변호사는 "의사들이 감정을 해주면 고마울 정도"라며 "불리한 의료소송의 경우 의료인이 감정서 제출을 거부해서 결국에는 판사가 해당 소송을 기각시키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제출된 감정서마저도 의사의 의견 부분에서 납득할 만한 답변을 받기란 힘든 상황입니다. 환자의 상태와 의사의 행위에 대한 의견에 레퍼런스나 판단 근거가 제대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해당 의견을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아 과거 사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의료인의 의견을 공개화하고 근거제시 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또한 신 변호사는 '입장의 비호환성'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측면으로 설명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의사의 경우는 환자의 입장이 될 수 없고, 환자 또한 의사의 입장에서 재판을 진행할 일이 전무합니다.

그러나 "다른 상임감정위원인 전문 건축사나 변리사의 경우는 다르다"는 게 신 변호사의 주장입니다.

건축사의 경우 가해 건축주가 될 수도 있고 피해를 입는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리사 또한 특허소송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쪽이든 해당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입장의 호환성을 가진 전문직종의 경우 상임감정위원으로서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감정 절차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 목적이 단순히 사실관계 확인에 그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의료사고 속 의사의 과실 여부나 주의의무를 판단하는 의견 등은 온전히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신 변호사는 또 다른 예시를 들며 상임전문심리위원 재판개입 절차의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신 변호사는 "의료사고 소송에 사건번호가 붙기 시작한 1989년 초기에는 70%의 원고승소 판결이 내려졌는데, 최근 그 비율이 30%로 뚝 떨어졌다"며 "연간 1000건 정도로 소송 건수에는 큰 변화가 없으니 무분별한 소송이 늘어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결국 의사가 소송에 개입한 순간부터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며 "그러나 법원은 의사의 감정서는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만 답하고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 변호사는 "의료사고를 당해서 재판을 하는데 의사의 감정서를 판단 근거의 일부분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를 환자나 원고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겠느냐"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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