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고친 법령 용어, 국민 가까이에, 국민의 손에
알기 쉽게 고친 법령 용어, 국민 가까이에, 국민의 손에
  • 이현희 안양대 국어문화원장
  • 승인 2020.11.24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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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안양대 국어문화원장
이현희 안양대 국어문화원장

법령은 모든 국민의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든 쉽게 찾아보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평생 가야 송사 한 번 할 일이 없고 법원 갈 일도 그리 많지 않은 일반 국민에게 법령은 굳이 찾아보아야 할 대상도 아니고 또 찾아 읽는다고 해도 무슨 말인지 쉽게 알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령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 어려운 것, 보아도 모르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활 모든 곳에 법령이 존재한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1년에 두 번은 자동차세를 내야 한다. 거기에는 ‘지방세법’이 적용된다. 또 이사를 가려고 하면 ‘주택임대차 보호법’에 대해서도 알아야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법령이 없이 우리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 법령 안에는 여전히 일본식 용어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줄여 써서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용어도 있다. 또 전문가들만 알고 쓰는 용어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법령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법령의 심사와 해석, 다양한 법제 업무를 담당하는 법제처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통해 그간 법령이나 행정규칙 등을 꾸준히 다듬어 왔다. 필자 역시 올해 몇 개 부처의 행정규칙을 검토하고 이 중 일반 국민이 알기 어려운 용어를 찾아 쉬운 우리말로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휘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또 행정규칙을 활용해야 하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같이 생각해 보려 한다.

‘무인’

요즘 각종 증명서는 보통 ‘무인(無人) 발급기’에서 발급받는다. 또 ‘무인 감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멋진 공연을 보여준 ‘무인 비행 장치'(드론)는 이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행정규칙 중 북한이탈주민 관련 내용에 ‘물품보관대장에 품명, 수량, 규격 및 기타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후 본인으로부터 서명 또는 무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여기서 ‘무인'(拇印)은 ‘손도장’ 혹은 ‘지장'(指章)을 말한다. 한자 ‘拇’가 엄지손가락이라는 뜻이니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미 국민들에게 ‘무인’은 ‘拇印’보다는 ‘無人’으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전에 만들어진 행정규칙이라고 해서 고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국민이 잘 쓰지 않는 말이라면 가려내어 적절하고 쉬운 우리말 용어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쉽게 고칠 수 있는 일이다.

이 외에도 행정규칙에는 ‘소산'(燒散)이나 ‘문취'(文取)와 같이 일반에서 널리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도 보인다. 군대 통신병 중 문서를 처리하는 일을 주로 하는 병사를 ‘문취병’이라 한다는데, 굳이 군대 용어를 써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문서 처리’ 정도로 고쳐보면 어떨까. ‘징구하다’나 ‘인장’ 등도 이미 ‘알기 쉬운 법령팀’에서는 ‘내게 하다’, ‘도장’으로 쓰도록 권고하는 용어이다.

‘신초’

나무를 기르는 사람에게 ‘신초’만큼 반가운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너무 많이 난 ‘신초’는 가지치기를 통해 정리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신초’는 무엇일까? ‘식재된 소나무는 활착이 안정된 상태로 신초발달이 양호함’과 같은 행정규칙은 ‘소나무’와 ‘안정된 상태’, ‘양호함’을 제외하면 한 번에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식재’는 ‘(나무)심기’, ‘활착’은 ‘뿌리내림’으로 ‘신초’는 ‘새 가지’ 정도로 바꿔서 다시 써보면 어떨까.

‘심은 소나무는 뿌리내림이 안정된 상태로 새 가지의 발달이 양호함’ 정도라면 일반 국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산록부'(山麓部)나 ‘산복부'(山腹部)와 같은 용어도 사용되는데, 사실 한자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두 용어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기 어렵다. ‘산기슭’과 ‘산허리’와 같이 쉬운 우리말로 바꿔 썼다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법제처를 중심으로 정부 부처에서도 쉬운 법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다. 여러 부처에서는 법령에 쓰인 어려운 용어, 일본식 한자어, 전문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 해당 부처 누리집을 통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산기슭'(산록부)이나 ‘산허리'(산복부)도 해당 부처의 누리집에 순화된 행정용어로 공개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법령에서 ‘산록부’가 쓰이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법령을 쉬운 우리말 용어로 다시 쓰고 고치려는 노력이 큰 만큼 실제 법령이나 행정규칙에 이러한 노력이 오롯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법령을 가까이에 두고 쉽게 찾아 읽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국민의 손에 우리 법령이 온전히 놓이게 될 것이다.

이현희 안양대 국어문화원장 saeah-shin@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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