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9개월 tvN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 진상 촉구 기자회견 열려 대책위 "하루 4시간밖에 못자고 55일 일하면서 단 이틀 쉬었다" 근로기준법 특례법도 무용지물... 고용노동부, CJ E&M 내사 착수

 

 

[앵커]

국내 굴지 대기업 계열 방송사에 드라마 PD로 입사했던 한 젊은 PD가 9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늘 이 젊은 PD의 어머니가 아들이 입사하고 일했던 방송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박가영 기자가 다녀 왔습니다.

 

[리포트]

[김혜영 / 故 이한빛 PD 어머니]

“6개월이나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한빛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침밥을 차려놓고 ‘한빛, 밥 먹어라’ 하며 방문을 열다가 주저앉곤 합니다..."

지난해 종영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의 자살을 둘러싼 사측의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오늘 오전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 앞에서 열렸습니다.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는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PD의 노트북과 SNS 등에 남은 근무자료들을 토대로 재구성해 본 이 PD의 업무 강도는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습니다.

하루 수면 시간은 4시간 정도에 불과했고 조연출로 일한 55일 간 온전히 쉰 날은 단 이틀에 불과했습니다.

연출 업무 외에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외주업체 뒷정리도 모두 이 PD가 떠맡았습니다.

이 PD가 남긴 유서엔 이같은 불합리한 일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마음고생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월급을 쪼개 세월호 4.16연대나 KTX 해직 승무원 단체에 기부를 했을 정도로 비정규직 등 사회 약자에 관심을 가져왔던 아들이었습니다.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드라마 ‘혼술남녀’도 공시생 등 이른바 이 시대 아픈 청춘들을 어루만져주는 줄거리의 드라마였습니다.

[김혜영/ 故 이한빛 PD 어머니]

“밤을 새우고 끼니도 챙겨먹지 못한 채 일하는 청년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송을 만든다며 그 뒤에서는 청년들의 열정을 착취하는 비인간적인 관행을 한빛은 무척 힘들어했던 것입니다. 다시는 한빛과 같은 슬픈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믿을 수 없는 아들의 죽음, 유가족들은 사측의 사과와 정확한 근무 실태 등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에 다시 한 번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자체 조사 결과 故 이한빛 PD의 근태 불량으로 사측에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PD의 제작 환경이 타 프로그램과 대비할 때 근무강도가 특별히 높은 편이 아니었다'는 등

한 마디로 사측은 책임이 없고, 이 PD가 나약해서 그런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고 이한빛 PD의 동생 한솔 씨가 지난 17일, 형의 사연을 SNS에 올리며 알려졌고 다음날 고용노동부는 CJ E&M 대한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내사 결과를 바탕으로 특별근로감독에 나설 방침입니다.

[스탠드업]

입사 9개월 밖에 안 된 젊은 조연출의 죽음.

이한빛 PD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이 PD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드라마 ‘혼술남녀’ 종방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법률방송 뉴스 박가영입니다.

 

[유재광 앵커] 유명 드라마 조연출로 활동했던 한 PD가 입사 9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 앞서 전해드렸는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취재 기자와 함게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박가영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박 기자.

[박가영 기자] 네

 

[앵커] 숨진 고 이한빛 PD, 대책위에서 이한빛 PD가 촬영기간인 55일 간 이틀 쉬면서 쪽잠 근무를 했다고 주장하던데 근무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 아닙니까.

[기자] 예, 보통 일반 회사원이라면 법으로 정해진 대로 하루에 8시간 근무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주말에 쉬는 게 근로기준법 기준인데요, 현실이 법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드라마 제작업계는 그 정도가 정말 심하다고 합니다.

노동 강도가 워낙 세다보니 하루에도 3~4시간 쪽잠 근무를 하면서 버티는 게 다반사라고 합니다. 업계에서는 이걸 ‘디졸브’라고 표현한다는데요.

 

[앵커] 디졸브요? 원래 편집할 때 앞뒤 장면을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편집 기법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기자] 네 맞습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이 용어를 빗대서 잠깐 존 상태에서 눈을 한번 깜빡했는데 다음날로 바뀌어 있는 이런 상황을 ‘디졸브에 걸렸다’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날이 새버리는 열악한 상황을 빗댄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한빛 PD는 그래도 정규직 사원이었다고 하는데, 정규직 비정규직 가를 건 아니지만, 이게 이한빛 PD 드라마에 유독 심했던 건가요, 아니면 보통 이런 건가요. 아니면 이 PD에게 다른 무슨 사연이나 얘기가 더 있는 건가요.

[기자] 작년에 tvN에서 방영된 ‘혼술남녀’라는 드라마는 7월부터 제작이 들어가서 전체 16회 분량의 절반을 미리 찍어두는 걸 계획해서 촬영이 진행됐는데 8월 12일, 책임 PD의 결정으로 계약직 외주 제작팀이 대거 교체되면서 8월 27일이 돼서야 촬영이 재개됐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사측을 대신해서 일방적으로 계약직 외주업체들과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인데요. 이한빛 PD는 대학시절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데, 자신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쥐어짜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매우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평소 비정규직 문제 해소에 관심 있던 젊은 PD가 정작 자신이 비정규직에게 비합리적인 업계 관행을 강요하는 즉 이른바 착취를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자괴감을 느꼈다 이런 얘기인 건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대책위에서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 유서 일부를 공개했는데요, 대책위 전진희 국장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죠.

[전진희 / 청년유니온 국장]

“유서에서의 내용에서 보면요 故 이한빛 PD가 괴로워했던 지점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요, 이한빛 PD가 자기가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당사자이면서 그리고 노동착취를 해야 되는 자리에 서 있었던 것에 대한 괴로움, 그것을 ‘경멸했던 삶이었다’ 라는 내용이 나오고 그래서 경멸했던 삶을 이어나가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CJ E&M은 뭐라는가요,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이한빛 PD가 숨진 채 발견된 날은 지난해 10월 26일입니다. 당시 유가족들은 언론 취재를 오히려 피하면서 사측에게 진상조사 및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측은 이한빛 PD의 '근태 불량'을 거론하면서 사측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27일자로 CJ E&M 측에서 보내온 서면질의서 회신에는 “故 이한빛 PD의 제작환경이 타 프로그램에 대비할 때 근무강도가 특별히 높은 편이 아니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앵커] '이쪽 업계가 원래 그런데 좀 적응을 잘 못한 거 같다' 뭐 이런 취지네요 그러니까.

[기자] 네, 이 때문에 결국 유가족들은 대책위를 꾸려서 이한빛 PD가 사망한지 6개월여 만인 지난 18일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이번 사건을 대중 앞에 알리기 시작했고, CJ E&M 측은 다시 한 번 사측 공식 입장을 발표했는데요.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앵커] CJ E&M 관계자 이야기 한 번 들어보죠.

[CJ E&M 관계자]

“(실태 조사가) 사실 해석하는 것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 차원에서 저희는 더 ‘제3자라든지 공기관을 통해서 수사가 됐으면 좋겠다, 진상 규명됐으면 좋겠다' 그런 취지로 말씀을 드렸던 거고요.”

 

[앵커] 그래서 경찰이든 어디든 관련 조사가 진행되는 게 있나요.

[기자] 네, CJ E&M의 바람대로 됐다고 해야 될까요. 이번에는 고용노동부가 이 사건과 관련해서 CJ E&M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CJ E&M 자체에 시행된 내사도 이번이 처음인 것이고, 드라마 제작업계와 관련해서 이렇게 근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합니다.

 

[앵커] 궁금한데 , 이게 정말 법적으로도 아무 책임이 없는 건가요.

[기자]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에는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같은 콘텐츠 제작업계의 경우 특례법을 적용하고 있는데요, 1주 기준으로 12시간 이상 초과 근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에 예외를 두는 겁니다.

 

[앵커] 특례법을 적용하더라도 하루에 4시간밖에 못자고, 55일간 일하면서 단 이틀 쉬었으면 특례법도 위반한 거 아닌가요.

[기자] 대책위 측에서는 CJ E&M이 이 특례법도 위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요, 현실적으로 업계 근로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보니까 2011년 국가인권위에서 방송업계 종사자 실태를 조사해서 특임근로계약서 정책 공고를 내렸다고도 합니다. 이 사건 법률대리인 김동현 변호사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죠.

[김동현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 방송업계 종사자 관련해 실태조사를 진행했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예상한 바대로 초 장시간 노동이라든지 아니면 차별이라든지 특히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이 전반적으로 발생을 했고 그 당시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책 공고로, 뭐 특임근로계약서라든지 아니면 어떤 노동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든지 이런 것들을 정책 공고로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제 2017년이니까 6년이 지났지만 이런 정책 공고들이 사실상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은 것이지요.”

 

[기자]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는 현재 군인입니다. 기자간담회와 1인 시위를 마치고 지금은 다시 군에 복귀한 상태인데요,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가 죽어야지만 또 바꾸고, 죽었는데도 바꾸지 않는 건 더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방송업계 문제라든지 노동 착취 문제 등이 형의 메시지나 그런 아픔들이 좀 더 구체화되고, 맥락들이 구체화되는 과정으로 풀렸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앵커] ‘누가 죽어야지만 바꾸고, 죽었는데도 바꾸지 않는 건 더 안타까운 일이다’ 형의 죽음을 두고 이런 말을 해야 하는 동생의 심정이 어떨지... 관련 소식이 나오는 대로 후속 기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박가영 기자였습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