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부장판사 이정민)는 23일 김옥순(87) 할머니 등 일제 강점기 일본 군수기업에 강제 동원됐던 여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5명이 일본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 할머니 등은 당시 만 12~15세 어린 소녀들이었음에도 가혹한 환경에서 위험한 업무에 종사했다"며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 분명하고 우리 민법에 따라 불법행위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일제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23일 승소한 김옥순 할머니가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태평양전쟁이 최고조에 달한 1944년 일본은 남성들의 전쟁동원으로 부족한 인력을 메꾸기 위해 여성들을 상대로 한 '여자 정신근로대'를 만들었다.

당시 전북 군산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김옥순 할머니는 6학년이던 1945년 2월 제비뽑기에 걸려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강제로 일본에 끌려갔다. 다른 할머니들도 선생님과 모집원의 권유에 속아 강제 동원됐다.

할머니들은 후지코시(당시 회사명 후지코시 강제공업주식회사) 공장에서 근무할 당시 "강제노동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하여 정신적·육체적·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며 지난해 4월 위자료를 포함해 1인당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제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은 한일 양국에서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11년 10월 후지코시가 김 할머니 등을 모집할 때 기망·협박 등 위법적 권유가 있었다는 점과 강제노동을 강요했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권리가 실효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2012년 5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충돌한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후 대법원 선례를 따르는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14년 10월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27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16억 8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각 8000만~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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