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지난 6일 정부는 2025년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 명씩 늘려, 2035년까지 의사 1만 명을 추가로 확보해 의사 부족 문제를 해소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반발하며 사직서 제출 등의 집단행동을 예고했고, 지난 18일 한덕수 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집단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일반적인 근로자와 사용자에게는 국회나 정부 같은 공권력이 없다. 대신 사용자측은 구조적, 경제적 사권력을 가지고 있고, 근로자는 단체행동을 통해 나름대로 사권력을 만들어 대항한다. 그러나 의사의 경우 의사를 억누르는 사권력이 크지 않고, 국회와 정부의 공권력으로 정해진 ‘법령과 보건정책’에 따라 상당한 권한과 지위, 처우 등이 주어진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의사의 단체행동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공권력에 의해 적정한 권한과 지위를 보장받았는데, 공권력이 이를 일부 제한하려 한다는 이유로 단체행동으로 사권력을 만들어 공권력을 저지하려고 드는 것은 부적절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의사들은 의사 증원을 반대하기 위해, 환자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집단행동을 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의사들이 먼저 양보하면 나중에 존중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먼저 양보, 대화, 합리적 타협에 나섰다고 해서 이후 사회가 의사들을 존중할까? 오히려 ‘의사들이 정치적 힘이 무서워 마지못해 양보한 것 아닌가? 양보한 척하지 마라’거나 ‘누가 의사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며 의사들이 합리적으로 양보한 것을 두고 오히려 조롱하는 결과가 예견된다고 본다면 지나친 예측일까?

의사측의 생각은 ‘수가 많아지면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도 불리하지만,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 못 할 문제들이 많다. 어차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복잡한 논의를 하기도 어렵다. 먼저 양보한다고 얻는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체행동을 통해서라도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 현명하다. 변호사들이 수를 그냥 늘렸다고 누가 변호사를 존중해 주었는가?’ 같은 것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며 변호사 수를 지나치게 늘렸다. 그럼에도 수임료는 일정 수준 이하로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인 성향보다는, 의뢰인을 기만해 많은 선임료를 받은 후에는 ‘적당히’만 일하는 ‘법률시장에서의 생존에 최적화된’ 성향이 생존에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이렇듯 변호사 수와 법률 서비스 비용과 질의 문제는 단순히 숫자 증감 이상의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지만 정교하지 못한 담론인 ‘변호사가 많으면 여러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며 변호사가 급격히 증원되었다. 변호사 수가 늘어날 때 크게 저항하지 않은 변호사들의 주장을 존중해주고 있지도 않다. 이런 선례를 감안하면 의사들이 신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양보하는 전략을 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부와 국민들 다수의 생각은, ‘일단 의사를 더 늘리면 비용보다는 편익이 클 가능성이 높다. 수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최적의 방안이 아니며, 다른 부수적 문제들도 많다. 그러나 어차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복잡한 논의가 어렵다. 논의를 단순화시켜 일단 의사 수를 늘리고 보자는 것은 합리적인 요구다’라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사의 주장 모두 타당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의사단체는 이론적으로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단체의 논리적 주장을 공권력이 ‘부당하게 찍어 누른다고’ 느끼더라도, 의사단체가 국민의 불편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단체행동으로서 사권력을 만들어 저항할 것은 아니다. 의사 증원에 대한 정책의 의견 충돌에 대해, 논리적으로 어느쪽이 옳든지와 무관하게, 민주적으로 위임된 정당한 공권력을 갖는 국회와 행정부가 최종 결정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른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진실로 타당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결정이 날 정도의 법과 정책이 아닌한, ‘찍어누르기식’ 공권력의 행사도 일단 존중해야 한다.

의사의 단체행동을 노동조합의 활동에 비유한다고 치더라도, 의사 증원 후에 적정 근로조건과 처우에 대해 협상하고 필요하다면 단체행동을 할 일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단체행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큰 불편과 손해를 줄 수 있는 의료인, 군인, 경찰 등의 직업군은 ‘유능한 단체행동’을 통해 사회에 무엇이든 초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의사들은 ‘지휘부의 의사를 모두가 한 몸처럼 이행하는 유능한 단체행동’을 통해 어떠한 국민도 치료하지 않음으로서 이론적으로는 끝내 승리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부하를 많이 둔 유능한 장군의 쿠데타라고 정당한 것이 아니듯, ‘유능한 의사들의 단체행동’도 적정 선을 넘는 경우는 존중하기 어렵다.

사회구성원간 양보와 타협이 없고 불신하며 갈등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 너가 손해를 봐야 내가 이익을 보는 제로섬 게임 대신, 윈-윈의 정책에 가까워지려면, 사회구성원간에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복잡한 논의를 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공허한 주장일지도 모르나 극단적인 주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 대신, 양보하는 미덕이 긴 호흡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너그러우면서도 정교한 담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문화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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