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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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항소심 재판을 전담하는 경력 15년 차 이상의 고등법원 판사의 법원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법원 내부에서 인사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오늘(16일)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간 전국 고등법원 판사 퇴직(예정)자 총 71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고법에 부임한 지 평균 4.2년 만에 사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1년 만에 나간 판사도 6명, 2년 만에 나간 판사는 12명에 달했습니다.

고법 판사 퇴직자 열 명 중 일곱(52명·73.2%)은 대형 로펌으로 직행했고 나머지는 변호사 개업 또는 로스쿨 교수직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대형 로펌을 가기 위해 고법 판사라는 견장을 달고 보는 수준”이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고법을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2011년 고법 판사 지원제 도입으로 선발된 이른바 ‘10조 판사’ 들입니다. 법관인사규칙 10조는 “고등법원 판사는 상당한 법조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 지원을 받아 보한다”고 규정하는 데 여기서 ‘10조 판사’라는 별칭이 생겼습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인 최소 15년 이상의 경력을 채워야만 10조 판사 지원이 가능한 데다 자리가 한정돼 조기 발탁 인사로 평가됐습니다.

법원 내 엘리트 집단인 고법 판사 퇴직은 한해 한두 명에 그쳤지만,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8명(2018년)→1명(2019년)→11명(2020년)→9명(2021년)→2022년(13명)→2023년(15명)으로 계속 불어났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직후 올해 19일 정기인사를 앞두고도 14명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고법 판사의 ‘로펌 이탈’이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공직자 윤리 위배”라는 지적 못지않게, 법원 인사시스템의 실패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와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 폐지’가 맞물리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당초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고등법원 판사는 서로 보직을 순환하는 구조였지만, 2011년 법관인사 이원화 방침이 도입되며 ‘지법 판사는 지법에만, 고법 판사는 고법에만’ 전속시키는 구조로 바꿨습니다. 다양한 재판부가 있는 지법과 달리 고법은 민·형사, 행정 사건만 도맡고 큰 사건들이 몰려 격무가 심합니다.

이어 2021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법조 이원화를 완성하고 특권을 해체하겠다’는 명분으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마저 폐지하자 이탈 행렬이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검찰의 검사장과 비교해 ‘법원의 꽃’으로 불리던 고법 부장판사가 없어지니 승진의 ‘꿈’마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도 폐지 전 승진한 한 고법 부장판사는 “그나마 고법 부장제가 있어서 법관들이 법원에 남아 있었다면 이제 그런 유인마저 없는 처지”라며 “시장에서 가격을 높게 쳐주는 중견 법관 때 빨리 나가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법 부장판사는 “소위 진보적이라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서 대형 로펌으로 직행하는 전관예우가 강화된 것은 아이러니”라며 “로펌을 가면 최소 연봉 4~5배가 오르니 눈앞의 과실을 따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도 대책 마련에 돌입했습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19일 법원 내부망에 “지방권 고법 재판장 공석 충원에 필요한 범위 내의 지방 순환 근무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도권 고법 판사의 지방 순환 근무 규모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현재 수도권 고법 판사는 수도권에서 5년 근무를 마친 뒤 정년 때까지 ‘지방 3년→수도권 3년’을 반복해서 오가는데, 지방 발령을 앞둔 고법 판사 4년차 때 이들의 사표가 쏟아진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올해 선발한 수도권 고법 판사의 ’경력‘ 문턱도 대폭 높였습니다. 종전 지방법원 신입 부장판사급이 선발 대상이었다면, 이번 인사에선 지법에서 최소 3년 근무를 마친 부장판사들을 중심으로 선발을 진행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조기 선발을 하다 보니, 더욱 빨리 나가게 된 측면을 고려했다”며 “앞으로는 지법에서 충분한 경력을 쌓고 온 이들을 대상으로 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이런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남아있는 연수원 33~35기 출신 고법 판사들은, 자신들보다 한참 높은 기수의 선배들이 들어오면 법원 내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구조”라며 ”오히려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승진 기회 및 보상 확대 등을 통한 실질적인 핵심 인력 유출 방지 대책이 먼저라는 지적입니다. 또 다른 판사는 “각 지법의 항소부와 고등법원을 통합하는 항소법원을 마련하거나 연수 및 성과급을 확대해 인센티브 자체를 크게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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