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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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집 앞에 방치된 취객이 한파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그를 집에 데려다준 경찰관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술 취한 시민에 대한 보호조치를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 경찰관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경찰 조직 안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습니다.

오늘(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 경사에게 벌금 500만원, B 경장에게는 벌금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이들은 112 신고를 받고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A씨를 강북구 수유동의 한 주택 야외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갔습니다.

A씨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고, 두 경찰관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들에 대한 판결이 나온 후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법원이 일선 치안 현장의 고충을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고, 현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판결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지적이 나옵니다.

아울러 지휘부의 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업무상 과실죄'는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를 태만히 한 것입니다.

생명·신체 등에 위험이 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사람을 다치거나 숨지게 했을 때 적용합니다.

대표적 직군으로는 경찰과 소방관 등이 있습니다.

위험 발생이 뒤따르는 업무에 종사하는 이에게 고도의 주의 의무를 부과한 것인데, 통상의 과실범에 비해 형이 무겁습니다.

한 경찰관은 내부 게시판에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관은 주취자를 다세대 주택까지 데리고 갔으나, 정확한 호실을 몰라 대문 안 계단에 놓고 귀소했다"며 "통상적인 주취자 처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경찰관은 "주취자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서 귀가한 것을 왜 경찰에게 책임 지우느냐"며 "아주 나쁜 판결의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주취자가 파출소 소파에서 누워 자다가 뇌출혈로 죽은 사고가 있었는데, 당시 지구대장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주취자를 어디까지 모셔다드려야 업무상 과실치사를 면할 수 있나", "앞으로는 주취자 집에 안방까지 가서 이불 덮어주고 물도 떠다 주고 나와야 한다"는 자조 섞인 글도 있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찰의 보호조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릅니다.

해당 법 4조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합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찰 외 소방 당국,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 기관과의 협력 체계나 역할 분담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5월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을 손질했습니다.

의식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이나 의사능력이 없는 주취자는 소방 등 유관 기관과 협업해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등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주취자 병상이 있는 의료시설은 전국에 49개밖에 없습니다.

연간 90만건에 달하는 주취자 관련 112 신고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입니다.

특히 서울에는 4개 병원의 14개 병상뿐이라, 경찰관이 빈 병상을 찾아 '뺑뺑이' 도는 일도 빈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찰은 근본 대책으로 주취자 보호조치 관련법 제정을 추진 중이나,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주취자 보호법 4건이 6개월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주취자 처벌법 1건은 2021년 4월 발의돼 3년 가까이 상임위원회를 공전 중입니다.

주취자 보호법의 주요 내용은 경찰, 소방 당국, 지자체,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를 보호하는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각 지자체에 주취자 구호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일부 담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윤희근 경찰청장은 전날 주간업무 회의에서 이번 판결 등과 관련해 "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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