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릴 줄 알고 이어도와 제7광구가 어디쯤에 있는지 아는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나라와 영토분쟁 없이 영원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당연히 우리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영토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그렇게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아직 영토분쟁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주변 국가와 국경이나 대륙붕, 가스전 등과 관련해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도 터키-키프로스, 베네수엘라-가이아나 등에서 새롭게 긴장관계가 발생하고 있다.

또 이미 현실화된 영토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00년도 넘은 케케묵은 영토분쟁도 있다. 2016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서 다루어진 볼리비아-칠레 영토분쟁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볼리비아는 1879년부터 페루와 연합군을 이뤄 칠레를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벌였으나 처참하게 패배했다. 이후 볼리비아는 1904년 칠레와 체결한 조약에 따라 400㎞에 달하는 태평양 연안이 포함된 12만㎢의 영토를 상실하고 내륙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볼리비아는 내륙국이 되고 나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안데스 지역 티티카카 호수에서 해군 함정을 운용하곤 했다.

칠레는 자국 항구도시인 아리카를 볼리비아가 무관세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볼리비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전쟁 이전 상태로 영토를 회복하겠다며 칠레에 줄기차게 협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칠레는 볼리비아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1978년 마침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볼리비아는 2013년 4월 ICJ에 칠레를 제소했다. 1904년 칠레와의 조약에 따라 영토를 상실한 지 무려 109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ICJ에서 진행된 구두변론에서 볼리비아는 대통령까지 등장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볼리비아 대표단의 구두변론은 변론을 지켜보고 있을 자국민들을 상대로 칠레의 비열함을 비난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칠레의 구두변론은 어디까지나 국제법적으로 확립된 원칙과 선례들에 기반을 두고 17명의 재판관을 설득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비열함을 드러내 보이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만으로 냉엄한 국제재판에서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 결국 2018년 ICJ가 칠레의 손을 들어주면서 볼리비아의 오랜 숙원이던 태평양 접근권 확보는 무산됐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거나 이미 현실화되었거나 분쟁에서 국제사법기관의 힘을 빌려 국가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상대방의 비열함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을 볼리비아-칠레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100년이나 넘은 오래 된 사건의 경우 냉철하고 객관적인 상황 분석에 따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만약, 국제분쟁을 일으켜 국내 정치 상황에 이용하려고 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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