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준 판사의 국제법 이야기]

[법률방송뉴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주네덜란드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국제중재재판소(PCA,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헤이그컨퍼런스(HCCH) 등 국제재판소나 국제기구 관련 국제법 업무를 담당했었다.

그중 가장 흥미를 느꼈던 업무는 ICJ에서 진행되는 국가들 사이의 재판을 참관하고 그 진행상황과 선고결과를 정리하여 보고하는 업무였다. ICJ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대체로 해당 국가 또는 집권세력의 정통성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당연히 각국 외교부장관이나 법무부장관이 첫 번째와 마무리 구두 변론을 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볼리비아-칠레 사건에서는 볼리비아 대통령이 직접 ICJ 재판에 참석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는 헤이그에서 진행되는 다른 나라의 국제법 분쟁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 출장온 법조인들에게 수시로 ICJ 등 참관기회를 제공하고, ICJ의 구조나 재판절차 등에 대해 설명했다. 당연히 우리에게 가장 큰 국제법적 쟁점인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견해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많은 법조인들이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① 독도가 우리의 것이라는 점은 역사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너무나 명백한 것이지만 ② 우리가 ICJ에서 일본을 상대로 독도영유권을 다투게 되면, 우리는 패소할 것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처음에 이런 견해를 듣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논리로 무장해야 할 법조인들이 모순된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또한 의아했다. 만약 우리에게 독도의 영유권이 있는 것이 역사적이나 법률적으로 명백하면 언제 있을지 모르는 ICJ 재판을 대비해 이를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거꾸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더라도 ICJ에서 패소할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에게 독도의 영유권이 있다는 점이 그리 명백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ICJ 관련 업무를 진행하면서 법조인들이 왜 그런 견해를 가졌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① 한국에는 ICJ에서 구두변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명망있는 법조인이나 국제법 전문가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② 국제법 전문가 중 대부분은 일본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③ 일본은 국제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인식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국의 국제법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들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도 꽤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화창한 날 독도에서 멋진 사진을 찍거나 독도를 홍보한다면서 많은 돈을 들여 독도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외교부도 국내의 국제법 전문가들을 통해 독도가 우리 땅으로 기재된 고지도를 찾는 것에는 열심이었지만, 일본의 주장을 국제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논거를 찾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부 부처를 통틀어 독도,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관련 국제법 분쟁을 전담하여 준비하는 인력 또한 거의 없다시피 했다.

대한민국도 이제 국제법적 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국제법적 분쟁 준비 착수가 오히려 불필요한 분쟁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을 듣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지금이라도 국제법 전문가를 양성하지 않는다면 ICJ에서 일본을 상대로 독도의 영유권을 다투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ICJ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는 이준 열사가 1907년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서 나라 잃은 억울함을 국제법적으로 호소하다가 쓸쓸히 삶을 마감했던 바로 그 곳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전경 (사진=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전경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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