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의 '윤리사회 기원(祈願)']

[법률방송뉴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와 결혼을 약속했던 전청조가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된 이후 남씨도 공범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남씨는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혹시 남씨의 변호사들은 ‘준사법기관’답게 정직할테니,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하지 말고 변호사들에게 진실을 물어보면 어떨까? 아마 초등학생들도 “변호사가 정직하다”는 말에 코웃음을 치고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선호할 것 같다.

사기 사건 관련자들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제 당연한 듯이 여겨지며, 변호사도 예외는 아닐 듯 하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사회가 모든 거짓말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건, 기만의 악의가 없는 한 약간의 거짓말에 자기 생각을 포장해서 표현하는 게 때로는 이롭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정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사람의 정직함을 쉽게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가 ‘시험’이다. 실험실과 같이 통제된 공간에서 시행하는 테스트는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정직하고 성실한지를 드러낸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획일적 평가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누구나 인생 초반부에 겪는 학교에서의 생활은 정직함과 성실성, 그리고  ‘공정한 평가’의 원리에 따른 게임의 법칙에 근거한다.

물론, 현실 사회는 다르다. 사회생활에서는 진짜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의 중간에 있는 애매한 거짓과 왜곡이 판을 친다.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 결과의 원리가 ‘게임의 룰’이 된다. 사람이 가진 악함과 거짓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돈을 많이 벌려는 이기심과 집요함이 선한 결과를 낸다. 타인을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공격성이 때로는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 폭력과 폭언으로 대응하고 싶은 본심을 숨기고 가식과 기만으로 타인을 대하는 거짓이 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악함과 거짓도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거짓이나 악함은 불필요하며, 특히 사법제도에서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어떤 악함과 거짓은 오히려 선한 결과를 낸다’는 사고방식을 지나치게 확대해, 불필요한 거짓까지 용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자신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자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짓과 왜곡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변호사도 이를 조력한다. 이러한 기만적인 행동을 허용해 얻어지는 사회적 이득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운데도, 관대하게 허용하고 있다. 

‘라이어 라이어’라는 영화는 다들 거짓말을 하는 세상에서 혼자서만 거짓말을 못하게 된 변호사가 오히려 무력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변호사 제도는 사건 당사자나 피고인의 ‘승리를 돕는’ 무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변호사는 일종의 무기일 뿐이니, 악한 의도로 변호사를 이용하면 그 날카로움이 악한 행동에 사용된다. 하지만 변호사의 본래 역할은 사건에 거짓과 왜곡이 없게 만드는 것, 악인이 사법을 기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의뢰인을 도와주고 변호사도 콩고물을 나눠 먹는 것’을 자연스러운 시장원리로 여기고 변호사의 이익은 사건 당사자의 이익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여긴다. ‘변호사답게 정직하고 진실되다’라는 말은 이제 초등학생들도 안 믿는 새빨간 거짓 취급을 받는 표현인 듯하다.

요즘의 재판은 각 사건 관련자들과 변호사들이 일단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과 거짓을 활용하고, ‘거짓이 먹히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기만의 도박판처럼 변했다. 사소한 왜곡은 일상적인 것이어서 그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상당한 왜곡과 거짓조차도 ‘자기 자신의 방어를 위한 변론일 뿐’이라거나 ‘변호사 외에 누가 외로운 범죄자의 편을 들겠는가’와 같은 이유로 합리화된다.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 사회, 거짓말을 하다 적발되면 불이익을 받는 사회, 정직한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들을 조롱하는 사회, 변호사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하는 사회와 이를 위한 제도를 꿈꾸는 것은 몽상에 불과할 것일까? 법리에 밝은 판사나 검사가 거짓이나 속임수를 쓴다면 파면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변호사는 왜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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