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각하 원심 깨고 피해자 승소 판결
재판부 "일본에 대한 국가 면제론 인정할 수 없다"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법원이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법정을 나서며 두 팔을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구회근)는 오늘(23일)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1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일본 정부가 과거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인권 침해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앞서 지난 2015년 이뤄진 한일합의에 불복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1명은 2016년 12월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2억원은 2015년 한일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의 위로금인 1억원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2021년 4월 국제법상 국가면제 조항을 들어 주권 국가를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며,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낸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가면제 조항이란 다른 국가 및 재산에 대해 동등한 주권국가라는 근거로 다른 국가에서의 사법 관할권 및 집행권을 면제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A국가 법정에 B라는 주권국가를 피고로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측은 국가면제 조항을 무한정으로 보장할 수 없고 특히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오늘 항소심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재판부는 "한 국가 영토 내에서 그 국가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고 나치시절 독일군의 이탈리아인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일본은 전쟁 중 10~20대에 불과했던 피해자들을 기망, 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해 위안부로 동원했다"며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도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명의 일본군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문제 협상 한일 합의 등을 통해 이미 피해 보상을 완료했고, 이에 따라 한국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손해를 배상할 수 있는 시효가 만료됐다는 등의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이날 재판에 직접 출석한 이용수 할머니와 피해자들은 승소 판결이 나오자 손을 들고 환호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온 이 할머니는 만세를 외치며 기쁨을 표시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 있을 적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원고 변호인으로 나섰던 이상희 변호사는 "인권회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국제사회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누구도 면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일본의 자발적 배상과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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