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톡 콘서트']

[법률방송뉴스]

딸이 죽었다.  이후 아내와 아들도 차례로 하늘로 갔다. 불과 3년 만에 가족을 모두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될 만큼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예술은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더욱 화려한 꽃을 피게 하는 것일까?  신은 극단의 고통을 느끼던 이 불행한 영혼에게 동시에 '영감'이라는 선물을 함께 주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Verdiㆍ1813~1901)가 그 불행한 남자다. 베르디 하면 누구나 한두 개쯤 오페라 작품을 떠올릴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리골레토'(Rigoletto), ‘일 트로바로레'(Il Trovatore), ‘아이다'(Aida) 등 유명한 오페라가 너무나 많다.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중 가장 히트 작품이 많은 작곡가라 할 수 있다.

Giuseppe Verdi (1813.10.10 ~1901.1.21)
Giuseppe Verdi (1813.10.10 ~1901.1.21)

 

베르디는 오페라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베르디 이전의 오페라가 성악가 개인 역량에 기대어 공연을 끌어갔다면, 베르디 이후부터 오페라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과 독창의 가창성을 존중하면서도 중창과 관현악을 매치시키는 음악적 완성도가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던 이탈리아인들은 줄곧 통일을 염원했다. 음악의 나라답게 통일운동의 중심에도 음악이 있었고 그 메인 작곡가는 베르디였다. 당시 통일운동을 하던 시위 군중들은 ‘Viva V.E.R.D.I’라는 문구를 도시 곳곳의 벽에 썼다. ‘Viva V.E.R.D.I’는 이탈리아어로 ‘베르디 만세’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 숨은 의미는 ‘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이탈리아왕 만세’의 약자였던 것이다.

베르디의 첫 히트 오페라인 ‘나부코(Nabucco)’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 삽입되어 있다. 희망찬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이탈리아 국민의 마음을 위로했던 이 노래는 이탈리아에서는 제2의 국가로 여겨졌다. 지금도 이탈리아인들은 오페나 나부코를 관람하다가 이 노래가 나오면 모두 일어나서 떼창을 하고 그 곡을 다시 앙코르까지 한다. 

나부코는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 정상급 바리톤 조지오  론코니(Giorgio Ronconi)와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렙포니(Giuseppina  Strepponi)가 주역을 맡았다. 특히 스트렙포니는 신인 작곡가 베르디의 진가를 단번에 알아보았고 나중에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베르디의 또 다른 오페라 작품 ‘라 트라비아타’('길을 벗어난 연인'이라는 의미)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파리 근교에서 동거하던 스트렙포니와 베르디의 실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고 그래서 그만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걸작이 되었다. 

베르디는 고향 붓세토(Busseto)에서 밀라노(Milano)로 올라와 ‘밀라노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끝내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베르디가 이탈리아 국민 음악가의 반열에 오르자 베르디의 입학을 불허했던 그 학교는 나중에 ‘베르디 음악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올해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국립오페라단에서 11월30일~12월3일 거장 스테파노 포다(Stefano Poda)가 연출하고 국내 최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오페라 나부코를 공연한다. 겨울의 문턱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감상하러 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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