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박물관, 화랑에서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2022년 한국 미술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 1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밝힌 수치다. 정확히는 1조 377억 원이다. 불과 3년 전인 2019년에는 고작 3,811억 원이었다. 불과 3년 사이에 2.7배가 커진 셈이다. 이렇게 미술시장 자체가 커진 데다, 팬데믹 이후 문화생활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커져서인지 최근에는 이런저런 전시가 즐비하다.

코로나19 방역 당시 중단되었던 현장교육 프로그램도 다시 활발해졌다. 도슨트와 함께 자리를 옮겨가며 설명을 들으면 담임선생님을 따라 다니던 옛날 어린이 시절 생각도 나고…. 여러모로 재미있는 경험이다. 아, 도슨트가 아니고 큐레이터인가? 갤러리스트? 음. 에듀케이터라는 말도 쓰던데, 그건가?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초적인 개념이지만, 완성된 전시를 만나는 관객들에게는 헛갈리기도 한다.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도슨트, 그리고 갤러리스트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자.

 

■ 큐레이터는 전시를 기획한다

큐레이터부터 살피자. 큐레이터는 ‘보살피다’, ‘관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큐라(cura, 영어의 care에 해당)’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원처럼 왕이나 귀족의 보물 창고에서 소장품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수많은 소장품 중 특정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골라내서 홀에 전시하고, 연회에 꺼내어놓고, 다른 지역의 궁전에 있는 작품과 적당히 교체/이동하고, 다른 귀족에게서 빌려와서 왕에게 보여주고, 빌려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지 결정하고, 기타 등등 소장품과 관련된 일을 했을 거다.

현대에 오면 역할은 크게 확대된다. 시의성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기후변화가 우리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은 기획자가 있을 수 있다. 그는 일단 이 주제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있는지 찾아보고 관련 분야의 연구 성과를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찾아내는 일, 혹은 적당한 작가를 찾아내 취지를 설명하고 작품 제작을 의뢰하는 일, 성인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등 주요 타겟을 설정하는 일, 관람객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전시를 홍보하는 일, 예산을 마련하는 일, 행정적 작업을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렇게 큐레이터는 전시의 a부터 z까지를 기획한다. 영화로 치면 ‘감독’에 해당한다.

큐레이터는 크게 ‘기관 큐레이터’와 ‘독립 큐레이터’로 나눌 수 있다. 그 명칭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기관 큐레이터는 특정 미술관(박물관)과 근로계약을 맺고 근무하는 기획자, 독립 큐레이터는 근로계약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용역제공계약 등의 형식으로) 일을 하는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다. 독립 큐레이터가 되는 데에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관 큐레이터에게는 법이 인정하는 특별한 자격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바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6조가 정하는 ‘학예사’ 자격이다. 동법 시행령 [별표1]에는 준학예사, 1·2·3급 정학예사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나와 있다. 준학예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반드시 경력인정대상기관에서 일정 기간의 실무경력을 쌓아야 정학예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해 국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을 위해서는 법이 인정하는 학예사를 반드시 두어야 한다. 나아가 학예사 자격은 국가전문자격으로서 관련 직종 자격증 중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다. 미술관 큐레이터 채용공고를 보면 자격 요건으로 ‘학예사 자격증(정 1·2·3급 및 준학예사) 소지자’라고 쓰여 있는 게 대부분이다.

■ 에듀케이터는 전시기관 내의 교육전문가

에듀케이터는 전시기관 내 교육전문가를 뜻한다. 주로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자주 이루어진다. 전시 및 작품에서 어떤 교육적인 주제를 찾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과의 연계까지 연구한다. 기관이 만든 각종 아카데미의 강사진을 섭외하는 일도 맡는다. 한마디로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교육’과 관련한 모든 일을 두루 맡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큐레이터가 예술교육 업무까지 총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점차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따로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2012년에는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의 개정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사’라는 국가전문자격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동법 시행령 제20조는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에 1명 이상의 문화예술교육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제재조항이 없어 현재까지도 배치 상황은 기관별로 상이한 편이다. 규모가 큰 전시기관에서는 별도로 에듀케이터 채용공고를 올리곤 하는데, 이때 자격 요건으로 ‘문화예술교육사 2급 자격증’을 필수사항으로, ‘문화예술교육사 1급 자격증’을 우대사항으로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 도슨트는 전시 해설가

미술관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도슨트다. 도슨트는 쉽게 말하자면 ‘전시 해설가’다. 물론 큐레이터도, 에듀케이터도 전시에 나와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언론이나 VIP 등을 상대로 자주 한다. 하지만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는 다른 업무 영역이 워낙 넓어서 시간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시장에 상주하며 관람객의 안내를 맡고 작품 앞에 서서 해설하는 일은 주로 도슨트가 맡고 있다. 도슨트는 1907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크고 작은 전시에 필수적인 인력이 되었다.

도슨트는 어떤 노력을 들여 작품과 전시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다 파악하는 걸까?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보통 큐레이터가 전시 3~4주 전쯤 도슨트를 대상으로 심화 교육을 한다. 전문 도슨트를 기준으로 할 때, 도슨트는 전시 개막 1주일 전까지 스크립트를 준비하고 담당 큐레이터가 이를 검토한다. 이때부터 스크립트를 본격적으로 암기한다. 개막 전날에는 전시장을 큐레이터와 함께 돌면서 투어 교육을 실시한다. 오픈 직전에는 리허설을 한다. 더 충분한 여유를 갖고 준비하면 좋겠지만 여러 여건상 이렇게 벼락치기처럼 준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도슨트는 작품 앞에서 읊을 정보만 준비하는 게 아니다. 작품 앞 어디쯤 서서 설명할 것인지, 말의 속도, 복장, 관람객과 자신의 위치, 동선, 한 작품과 다음 작품 설명 사이에는 얼마나 시간 공백을 둘 것인지 등등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현직 큐레이터의 말에 의하면 도슨트는 ‘예산 빼고’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야 한다.

■ 갤러리스트는 화랑을 운영하는 사람

갤러리스트는 무엇일까? 갤러리스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우리가 흔히 ‘화랑’이라고 부르는 미술품 거래 영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앞서 설명한 큐레이터의 업무 외에 미술시장의 흐름을 읽어 컬렉터와 작가를 연결하고, 마케팅과 영업, 경영 업무까지 두루 총괄한다.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갤러리스트는 작품의 ‘판매’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작품이 얼마인지 잘 알고 있다. 기관 큐레이터는? 공공기관의 큐레이터에게 작품의 금전적인 가치는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도슨트, 갤러리스트. 하는 일을 살펴보니 역시나 고상하고 우아한 일인 것 같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도 깔끔한 정장 차림에 세련된 말씨로 역시나 우아하다. 실제로 큐레이터(학예사)는 업무 자체에 대한 만족도도 매우 높다고 한다. 2015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간한 '우리나라 직업인의 직무만족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큐레이터 및 문화재 보존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처우는 그다지 안락하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2년 이내의 계약직이고, 급여도 월 200만 원 안팎이다. 전문 지식을 갖추기 위한 투하 비용은 어마어마하지만, 아웃풋이 훌륭한 편은 아니다. 물론 금전적인 부분이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가 즐기는 전시는 이런 사람들의 노고로 만들어진다. 전시 그 자체도 훌륭한 미적 경험이 되겠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존재까지 떠올린다면 두 배, 세 배로 전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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