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반 심리하다 전원합의체로 넘겨...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전원합의체 판결로 선고
“항공기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것을 항로에서 이동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죄형법정주의' 확인 "법률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 항공보안법 '맹점' 드러나

[앵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을 접시에 안 담아줬다며 승무원 등을 폭행하고 비행기를 되돌린 ‘땅콩회항 사건’.

오늘(21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땅콩회항은 ‘회항’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항로에 대한 정의가 법에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를 따른 겁니다.

이철규 기자입니다.

[리포트]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월 취임한 후 첫 전원합의체 판결이자, 항로변경죄에 대한 첫 대법원 판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 땅콩회항 사건으로 항공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12월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KE086편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탑승장을 벗어날 때,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삼아 승무원과 사무장을 폭행하고, 비행기를 탑승장으로 되돌리게 한 뒤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땅콩회항 사건은 이른바 ‘상류층 갑질’ ‘재벌 갑질’에 대한 거센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키며 재판 결과가 커다란 관심을 모았습니다.

2심 결과에 불복한 검찰의 상고 이후 이 사건을 2년 반 동안 심리한 대법원은, 항로변경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대법관 전원이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지난달 13일 전원합의체에 넘겼습니다.

재판에서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이동한 공항 지상로가 항로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1심은 "항로에 지상로가 포함된다"며 조 전 부사장의 행위가 비행기의 항로를 위력으로 변경했다고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은 "항로의 사전적 정의는 항공기가 다니는 하늘길”이라며 항로 변경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 등에게 폭언·폭행을 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 판단이 옳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죄형법정주의에 비춰 항공기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것을 항로에서 이동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며, “지상의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 해 지상에서 다니는 길까지 항로로 보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2심 재판부가 조 전 부사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당시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는 평가입니다.

아울러 공항 내에서 바퀴로 움직이는 비행기를 되돌리더라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항공보안법의 맹점이 드러난 만큼, 국회가 입법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갑질’의 끝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던 땅콩회항 사건, 결론은 회항은 아닌 것으로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법률방송 이철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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