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법조삼륜, 근본개혁 시급하다' 1990년대 이후 대형 법조 비리 사건

"2016년은 가히 '검란(檢亂)'을 넘어 '법란(法亂)'의 해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달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고법 산하 법원 국정감사에서 현직 부장판사 뇌물수수 사건 등 잇따른 법조계의 비리 사건을 질타하며 한 말이다.

올해 초 '정운호 게이트'를 시작으로 68년 검찰 역사상 현직 검사장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낳은 '진경준 사건'을 거쳐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서 비리'까지, 2016년은 검찰과 법원을 가리지 않고 비리 추문으로 얼룩진 한 해가 됐다.

한 언론매체가 지난 10월 사법부 신뢰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검사에 대한 신뢰도는 5점 만점에 2.3점으로 법조 직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에 대한 신뢰도는 2.8점, 변호사는 2.6점으로, 법치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지난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전관예우 등 법조비리 근절 방안을 위한 토론회'. /연합뉴스

법조계 전반에 대한 이같은 국민들의 낮은 신뢰도는 비단 2016년 한 해에 발생한 비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 법조계는 오래 전부터 '신뢰의 탑'에 금이 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대형 법조비리의 시작,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1997년에 발생한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은 최초의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꼽힌다. 국내 사법 사상 최초로 판사들이 수사 대상에 오른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주변에서 형사사건을 주로 맡던 의정부지원 판사 출신 이순호(당시 36세) 변호사가 사무장을 통해 사건을 대거 수임한 것이 밝혀진 데서 비롯됐다.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은 1997년 9월부터 법조 브로커 단속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던 중 이 변호사의 사무장이 경찰서 유치장에 머무르며 70%의 사건을 싹쓸이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검찰은 조사 결과 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하고 2억4천만원의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사무장과 검찰 직원, 경찰관 등을 적발하고 구속했다. 일본으로 달아난 이 변호사는 수배됐다. 구속된 사무장의 수첩에는 이른바 '이순호 리스트', 전·현직 판·검사 2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찰의 계좌추적을 통해 의정부지원 전·현직 판사 15명이 이 변호사로부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은 9명의 판사를 징계위에 회부했고, 의정부지원 판사 전원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검찰은 '관행적 비리' 또는 '사법부 권위 존중'을 이유로 이들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결국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은 판사 15명, 검사 12명 등 27명의 판·검사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판사 5명과 검사 2명 등 7명을 자체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변호사는 '브로커를 통한 사건 수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법부가 국민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명확한 처벌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한 원심은 잘못됐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3년여가 지난 2000년 8월 서울고법은 이 변호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대전 법조비리' 사건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에 이어 1999년 1월 대전에서도 법조비리가 발생했다.

대전에서 사건을 싹쓸이하던 부장검사 출신 이종기(당시 37세) 변호사의 전 사무장 김모씨로부터 입수한 사건 수임장부 632매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김씨가 해고를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이 변호사의 비밀 장부 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장부에는 이 변호사가 1992년 개업 이후 5년간 법원·검찰·경찰 직원 300여명으로부터 소개받은 사건 내용 및 소개비 등이 적혀 있었다. 당시 검찰 고위직을 포함해 현직 판·검사 이름도 포함됐다.

수사 결과 검사 25명의 금품수수 혐의가 적발됐고, 검찰은 검사장급 2명을 포함해 검사 6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7명을 징계조치하거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줬다.

법원에서는 고법 부장판사 2명이 사표를 냈고, 수수액수가 100만원 미만인 판사 3명은 구두 경고를 받았다.

 

■ 한국형 '게이트' 서막 알린 '윤상림, 김홍수 게이트'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법조비리 사건에는 '전문 브로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2005년 '윤상림 게이트'는 브로커 윤씨(당시 53세)가 전직 검찰·경찰 고위 간부 등 400여명에게 금품 로비를 한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촉발됐다.

법조계 지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던 윤씨는 주변 민원인들로부터 "사건을 잘 해결해 달라"는 명목 등으로 1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로비 대상과 배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로 수사가 종결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에는 법조 브로커 김홍수(당시 58세)씨의 폭로가 터져나왔다. '김홍수 게이트'는 전형적인 법조 브로커 사건으로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 등이 한꺼번에 적발된 초유의 사건이다.

서울 강남에서 고급 카펫트 수입사업을 하던 김씨는 법조인 동창을 통해 서울지법에서 근무하던 A 판사를 소개받았다. 이후 김씨는 판·검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술값을 계산하고 인사 때마다 전별금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인맥을 넓혔다.

2005년 7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김씨는 그동안 자신이 향응을 제공해왔던 법조인들로부터 외면당하자 2002~2005년 전·현직 부장판사와 검사, 경찰 총경 등 여러 명에게 사건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사건으로 차관급인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구속 기소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김영광 검사와 경찰서장 민오기 총경 등도 김씨로부터 돈을 받고 재판이나 사건 처리 과정에 도움을 준 혐의로 구속돼 실형 또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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