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에 중정 대공수사국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비서실장까지
"법과 원칙 중시한다" 해서 붙여진 별명 '미스터 법질서'
블랙리스트 작성·실행 지시, 직권남용으로 징역형... 수의 입고 법정에

 

 

[앵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항소심 첫 재판이 오늘 열렸습니다.

대학 재학 중 고시에 합격해 검찰총장, 법무장관, 국회의원, 그리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던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한평생 양지에서 꽃길만 걸었던 김 전 실장을 구치소에 잡아넣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도대체 블랙리스트가 뭐길래...

블랙리스트와 김 전 실장의 인생유전을 김효정 기자가 ‘카드로 읽는 법조’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김기춘, 1939년 경남 거제 출생.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4년 대한민국 검사로 임관합니다.

1972년 중앙정보부 파견 시절 검사 김기춘은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토대, ‘유신헌법’ 초안 작성 실무를 담당합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낸 김기춘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됩니다.

그의 나이 불과 34살이었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김기춘은 승승장구했고 1988년, 검찰 권력의 최정점 검찰총장 자리에 오릅니다.

3년 뒤인 1991년엔 법무부장관이 됩니다.

‘미스터 법질서’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 해서 붙여진 김기춘의 ‘별명’입니다.

1991년 10월 13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미스터 법질서’ 김기춘은 “모든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겠다”는 ‘범죄와의 전쟁’을 법무장관으로 진두지휘합니다.

그러나 이 ‘미스터 법질서’ 김기춘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한 데 모아 놓고 대선 모의를 합니다.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YS가 안 되면 영도다리에 다 빠져 죽자”

김기춘은 지역감정 자극사에, 우리 정치사에 부정적 의미에서 영원히 남을 말을 남깁니다.

이후 김기춘은 1996년 15대 국회 한나라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내리 3선을 합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엔 탄핵소추위원장으로 탄핵안 가결에 앞장서며 “노무현 대통령은 싸이코다” 라는 말을 남깁니다.

2013년, 김기춘은 박근혜 정부의 첫 청와대 비서실장이 됩니다.

그의 나이 74살.

그리고 김기춘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기춘대원군’이 됩니다.

그 막강한 권력으로 김기춘은 대통령을 위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합니다.

1심 재판에서 김기춘은 “좌파에 치우친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이었다. 망한 왕조의 도승지로서 깨끗이 사약을 받고 죽겠다” 는 말을 남깁니다.

사약까지는 아니어도... 1심 재판부는 김기춘에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합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막대한 권력을 남용해 범행의 계획, 수립과 실행, 지시를 담당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초원복집’에 부산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던 김기춘은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됩니다.

그러나 ‘검사’ 출신 김기춘은 선거법이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했다며 헌법소원을 내고, 헌재는 김기춘의 손을 들어 줍니다.

검사 공소는 취소되고 김기춘은 재판도 받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 1심에서도 김기춘은 “정책 수행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법의 심판을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가정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지만, 초원복집 사건 그때, 김기춘이 ‘법의 심판’을 받았더라면, 그래서 세상에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배웠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그 자신은,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요.

적어도 구치소에 수감돼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차고 법정에 불려나오는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 듯합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법률방송 ‘카드로 읽는 법조’ 김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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