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 달, 한국사회 바뀌고 있나 ②법 해석 우왕좌왕
-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 내부에서도 '직무관련성' 해석 엇갈려

# 경기 화성동부경찰서에서 지난 15일 조사를 받고 자신의 명함과 함께 5만원권 20장이 든 봉투를 경찰관 책상 위에 올려둔 A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 경찰서 사무실에 1만원을 떨어뜨리고 간 B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조사를 마친 후 "친절히 조사해줘 고맙다"며 경찰관에게 1만원을 건넸지만 받지 않자 사무실 바닥에 몰래 떨어뜨리고 간 게 화근이었다. B씨는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 지난달 28일 강원 춘천경찰서 경찰관에게 4만5천원 상당의 떡 한 상자를 보낸 C씨도 재판에 넘겨졌다. 폭행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됐던 C씨는 "개인 사정을 고려해 경찰 출석 시간을 조정해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표시로 떡을 보낸 게 문제가 됐다.

 

서울시 기획상황실에서 지난달 7일 열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관한 서울시, 자치구, 교육청 등 감사부서장 간담회'. /연합뉴스

 

■ 한순간에 불법 된 '관행'... 온 국민이 영향권

그동안 곳곳에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온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접대 문화와 뿌리깊은 청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제정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달라진 우리 사회 모습이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약 400만명에 이른다. 이들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국민 전부가 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사실상 전 국민이 김영란법의 영향권에 들면서 한국 사회는 지금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저녁 약속이 줄어들고, 사회 전반에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됐다. 이 법을 이유로 그간 뿌리치기 힘들었던 청탁을 거절할 수 있게 된 것은 법의 긍정적 효과로 손꼽을 만하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그동안 당연시해왔던 것들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데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점은 큰 소득이다.

하지만 공직사회 등을 중심으로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관련 상권이 얼어붙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법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고 관련 문의도 빗발치는 상황이다.

김영란법 시행 한 달(10월 27일 기준), 국민권익위원회에는 4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에는 모두 301건의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 시행일인 9월 28일부터 10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청탁금지법 관련 서면신고 12건, 112 신고 289건이 접수됐다.

서면신고 12건은 모두 금품 수수에 관련된 신고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112 신고는 김영란법 위반 여부에 대한 단순 상담 문의였다고 한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 권익위 내부에서도 '직무관련성' 해석 엇갈려

시행 한 달이 됐지만, 김영란법은 아직까지 모호한 기준 탓에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위법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권익위가 직종별 매뉴얼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사례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혼란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직무관련성'에 대한 해석이다. 주무 부처인 권익위 내부에서도 직무관련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청탁금지법은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금품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회 100만원, 매 회계연도 300만원 이하 금품을 주고 받는 경우 직무관련성이 있을 때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 직무관련성이 있더라도 축의금 등 경조사비의 경우 가액기준 상한에 따라 10만원까지는 합법으로 본다.

성영훈(가운데)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탁금지법은 크게 2장에서 부정청탁 금지, 3장에서 금품 등의 수수 금지를 위반행위로 규정한다. 다만 법 8조3항 규정에 의해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원활한 직무 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인 때에는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까지 허용했다.

 

■ "법 해석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가이드라인 필요"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에 대한 뚜렷하고 명쾌한 기준이 없이 권익위가 '무조건 금지' 해석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권익위의 때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 담당 인원의 부족, 유권해석 문의에 대한 낮은 답변율 등에 대해 질타했다.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였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마련된 김영란법.

하지만 광범위하고 모호한 법 규정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의 근본 취지를 살리되 법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예상치 못하게 피해를 보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한 규정과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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