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 달, 한국사회 바뀌고 있나 ③소극적인 법원, 검찰
- 법원 "'직무관련성' 고무줄처럼 해석될 수 있다”
- 검찰 “법 위반자 먼저 찾아내려는 수사 않겠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등을 금지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청탁금지법은 우리 사회 곳곳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소상인들은 경제적 타격에 부작용을 호소하고 나섰고, 법조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은 저마다 몸을 사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실제 김영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단 3건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조심하자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직까지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처벌을 결정해야 할 법원과 검찰에서조차 제대로 된 기준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 대법원 “김영란법 너무 추상적... 재판 기준 세우기 어렵다"

법원은 김영란법 시행 당시부터 향후 재판에 대한 부담을 토로해왔다. 김영란법의 핵심적 내용인 ‘직무관련성’의 해석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법 시행 하루 전날인 9월 27일 80페이지 분량의 ‘청탁금지법 Q&A’를 발표하며 법률의 모호함을 지적한 바 있다.

대법원은 “법원이나 판례는 직무관련성을 ‘본인이 담당하는 구체적인 직무’라고 봤는데 국민권익위원회는 직무관련성의 범위를 너무 넓혀 놨다”며 “법이 고무줄처럼 해석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법이 제재하는 영역 확대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셈이다.

또한 “직무관련성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면 판사는 다른 법조인을 누구도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향후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판례를 통해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직무관련 행사에서 1인당 5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받는 경우 권익위는 ‘3만원이 넘는 음식물 제공은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금지된다’고 보고 있지만, 법원의 경우 ‘참석자에게 일률적으로 제공했다면 사회상규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직무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금품을 받았지만 대가성이 없을 경우 권익위는 ‘대가성이 없어도 직무관련자로부터 금품 수수는 금지된다’고 해석했지만, 법원은 ‘개인적인 친분관계 표시로 받았을 때 등은 예외로 본다’고 해석했다.

결국 권익위는 직무관련성의 범위를 ‘직업적 분류를 통해 폭넓게 적용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인 반면, 대법원은 ‘구체적인 담당 직무를 고려해 판단한다’는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달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김영란법 해석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김영란법의 내용 성질상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며 “대법원은 김영란법 재판의 기준을 세우는 작업을 남겨놓고 있는데, 김영란법이 너무 추상적이라 기준을 마련하는 데 고충이 있다”고 토로했다.

 

■ 검찰 “김영란법 위반자 먼저 찾지 않겠다” 선언

김영란법 적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대검찰청은 지난 9월 27일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검찰 조치를 발표하며 '신고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를 개시하고 위반 사례를 찾아내기 위한 수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탁금지법 시행 대비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온 검찰은 김영란법의 효율적인 시행과 혼란 최소화를 위해 고심하다 이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선 검찰은 공무원 등이 직무에 관해 뇌물수수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는 뇌물죄를 먼저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관한 부정청탁을 받고 재물을 취득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배임수재죄를 우선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청탁금지법보다 더 엄격하고 법정형이 높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의 경우 공직자 등이 직무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김영란법 적용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담당 부서가 별도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검찰은 또 김영란법 위반자의 경우 일반 형사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입건이나 기소유예, 기소 등 구체적인 사건 처리에 관한 세부 기준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영란법 등장으로 우려를 낳았던 이른바 ‘란파라치'(김영란법 위반자를 신고해 포상금을 노리는 파파라치)에 대해서도 엄격한 입장을 고수했다.

김영란법을 악용한 무분별한 신고에 대해서는 수사권 발동을 자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검찰은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근거없이 신고하거나 진정을 제기하는 경우 수사없이 사건을 종결키로 했다. 허위 신고로 드러날 경우 형사사건과 마찬가지로 무고죄 처벌도 받게 된다.

 

■ 한 달 동안 위법 사례 총 3건… “판례 정립 시간 필요할 것”

김영란법 시행 한 달이 지난 지난달 27일을 기준하면 적발된 위법 사례는 단 3건에 불과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날까지 의정부지법, 서울남부지법, 춘천지법에 각 1건씩 김영란법 위반 사례에 대한 과태료 재판이 접수돼 진행 중이다.

김영란법 위반 사건 1호 재판은 춘천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고소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A씨가 김영란법 시행 당일인 9월 28일 출석시간을 조정해준 경찰관에게 감사 표시로 건넨 4만5천원 상당의 떡상자 때문이다.

문제는 3건의 사건 모두 김영란법 위반자가 어떤 점이 위법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감사의 표시로 금전이 아닌 떡을 건넨 1호 재판 사건의 경우 법조인들조차 위법 여부에 대한 해석이 나뉜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경우 법에서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본다”며 “김영란법은 직무관련이 있는 자에게 부정한 청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데, 과연 그 떡상자로 인해 어떤 부정한 청탁이 오갈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직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문제는 위반자가 제대로 위반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법이 시행 초기 과도기에 있는 탓도 있겠지만 이후 법원이 만들어내는 판례들이 쌓인 뒤에야 제대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재경 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판사는 과태료 처분을 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법의 취지 자체가 사회상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관행을 막아보자는 것 아니냐”며 “법이 만들어져 시행이 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과태료 처분이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판사는 결국 제대로 된 법 시행을 위해서는 다수의 판례가 생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들조차 법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나뉘고 있다”며 “법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법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많은 판례들이 나와야 하는 만큼 김영란법이 자리잡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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