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검사 경험 담은 『법치는 어떻게 붕괴하는가』 발간
"형사사법제도 국제 경쟁력 키워야"... 검찰에 쓴소리도

[법률방송뉴스] 국민 눈높이에서 검찰개혁 문제를 톺아보고, 바람직한 형사사법제도의 방향을 역설한 『법치는 어떻게 붕괴하는가』(천년의상상 발행)가 출간됐다. 저자는 20년 간 검사로 일하다 지난 2015년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김종민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책 서문에서 “국민들은 검사, 검찰, 검찰개혁의 실체를 정확히 모른다. 낯설고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라며  "20년 검사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참된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들에게 검찰의 본질, 검찰개혁의 핵심, 나아가 형사사법개혁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수처가 왜 태어나면 안 될 수사기관이었는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수사‧기소권 분리와 ‘검수완박’은 왜 잘못됐는지를 집중 조명하면서, “국민도 검찰개혁 논의에 참여해 바람직한 방안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1995년 검사 임관 이후 수사 분야는 물론 법무부 인권정책과장, 형사사법공통시스템 운영단장,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지냈다. 프랑스 그랑제꼴 국립사법관학교에서 수학했고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반부패회의 정부 대표, 유럽평의회 및 유럽인권재판소 등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검찰제도론』을 공저하기도 했다. 『법치는 어떻게 붕괴하는가』에는 이런 그의 경험과 전문가적 견해가 녹아있다.

■ 검경 수사권 조정,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김 변호사는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의 검찰 수사 시스템을 설명한다. 이전에는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검찰 형사부 검사들이 기소, 불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전부 송치받아 수사했다. 경찰이 미처 챙기지 못한 사건들도 형사부 검사들이 배당받아 일일이 챙겼다는 게 그의 말이다. 수사에 미진한 점이 있을 경우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다시 보완수사를 요청했다. 검사의 사건 처리는 부장검사와 차장검사의 지휘 아래 공소장과 불기소장 작성까지 도제식으로 엄격한 지도를 받았다.

고소인 입장에서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고소장 제출 기관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었다.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수사지휘를 했고, 고소인이나 사건 관계자들은 경찰 수사에 이의가 있을 경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검사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고, 수사 누락이나 증거 및 법리 판단이 잘못된 경우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가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상이 밝혀진 사건이라고 김 변호사는 강조한다. 당시 경찰은 서둘러 시신을 화장해 진상 은폐를 시도했으나,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한 형사소송법 제222조 변사체 검시 규정 때문에 경찰의 은폐 기도는 좌절됐다. "마침내 진상이 드러난 이 사건은 5공 군사정권이 종식되는 도화선이 됐고, 동시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이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이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제한됨에 따라 이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의 고소장은 검찰에서 접수하지 못한다. 이후 검수완박법이 통과되면서 검찰의 직접수사는 부패, 경제 2개 범죄로 제한되는 바람에 더욱 그 범위는 좁아졌다.

고소인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고소장을 경찰에 접수해야 하고, 공수처 관할 범죄는 공수처에 따로 고소장을 제출해야 한다. 즉 국민들이 일일이 검찰 수사관할 사건인지 경찰 수사관할 사건인지를 따져보고 고소장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수사권의 본질과 소추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사‧기소권 분리론으로 인해 국민 불편만 가중됐다”고 비판했다.

■ “위헌적 공수처, 존속할 이유 없다”

공수처는 1996년 참여연대가 부패수사 전담기구로 설치할 것을 입법청원하면서 시작된 이후, 고위공직자 비리를 효과적으로 수사하고 검찰 기소독점주의의 폐해와 특별검사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검찰개혁 방안으로 논의되어 왔다고 김 변호사는 전제한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현재 형태의 공수처는 '위헌적 수사기구'라고 주장한다. “공수처는 정부조직 원리에도 맞지 않고 전문성도, 정치적 중립성도 없기 때문에 존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21년 1월 28일 헌법재판소의 공수처 합헌 결정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생각을 여전히 견지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공수처는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까지 갖는 실질적인 ‘제2의 검찰’이기 때문에 검찰과 같이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소속 기관으로 설치되어야 한다"며 "그런데도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도록 했고 군검사의 권한까지 행사하는 막강한 특별수사기구인데도 설치 근거 자체가 헌법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공수처는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되며, 사법부 독립까지 침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이러한 공수처의 대안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 법무부 소속 특별수사기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수처 1년 예산은 181억 원”이라며 “1년에 한 건의 인지수사도 하지 못하는 공수처에 왜 그 많은 국민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지, 국민은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 “경제범죄 수사, 강화해도 모자란데 손발 잘라버려”

김 변호사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최초 보도한 박종명 경기경제신문 기자의 변호인이다. 화천대유 측은 박 기자를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내고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한 상태다.

김 변호사는 대장동 사건의 본질을 “사업실적도 전혀 없는 급조된 민간시행사가 1퍼센트 지분으로 1조 원대 개발이익을 독식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남시의 납득할 수 없는 인허가 과정과 사업협약서에 ‘초과이익 환수 규정’이 누락된 경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핵심 측근 유동규가 개발이익 700억 원을 받기로 한 이유 등을 수사를 통해 밝히고, 배임 혐의와 뇌물 의혹 및 이를 결정하고 지시한 윗선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특히 금융‧증권 범죄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했다. 대표적 사모펀드 사건인 라임 사건은 피해 규모가 1조 5천억 원, 옵티머스 사건은 5천500억 원이다. 이런 미증유의 피해 규모에도 불구하고,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라임 사건과 신라젠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전격 해체해 논란이 됐다.

김 변호사는 “합수단은 2013년 출범한 이후 약 1천여 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는 등 금융‧증권범죄 수사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며 "이런 대규모 사건에 대한 수사 역량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수사의 손발을 잘라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합수단 해체 이후 수사 중이던 사건은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 1,2부로 재배당됐고, ‘여의도 주가 조작꾼들만 좋게 되었다’라는 말이 파다했다"면서 "희대의 펀드 사기로 불린 옵티머스 사건 관련자들은 서면조사 등 형식적 수사만 받고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고 지적했다.

■ "형사사법제도는 법경제학적 관점 요구되는 영역"

책에서 김 변호사는 "형사사법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국가 인프라"라고 강조한다. 형사사법제도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신속한 수사와 재판으로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측면에서 "형사사법 분야는 법경제학적 관점이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럴 경우 국민에게 많은 이점이 생겨난다. 당장 세금으로 지출되는 형사사법 관련 예산이 절감되고, 형사사법 전자화를 확대해 고소장이나 각종 증명서, 수사서류 사본 등을 인터넷을 통해 제출하거나 교부받는다면 직접 검찰청이나 경찰서에 가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절약된다는 설명이다. 그 여력을 생산적 부문에 투입하게 되면, 개인의 편익은 물론 국가‧사회적으로도 큰 이익이 될 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교정행정도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인데, 교도소에 수감하는 구금형이 집행유예 등 사회 내 처분보다 비용이나 재범 방지 측면에서 더 나은지 여부는 형사정책의 중요 이슈 중 하나다. 김 변호사는 “법경제학적인 관점을 전면 도입한 형사사법 개혁은 국민과 사법이 서로 화해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형사사법의 정의를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죄 지은 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명백히 범죄 혐의가 있는 자에 대해 이를 효과적으로 수사하지 못하고 처벌에 실패한다면 이것 또한 정의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는 “효과적인 수사 수단을 제도적으로 갖추지 못하는 사이에 억울한 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깊어가고, 국가와 사회는 범죄 앞에 무력하게 되며, 결국에 가서는 국가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불신과 비난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 "헛된 공명심 버려라, 정의는 천천히 세우는 것"... 검찰에 쓴소리도

김 변호사는 “우리가 검경 수사권 조정, 검수완박 같은 이슈에 매몰돼 있는 사이 UN, OECD, 유럽연합, 유럽평의회를 중심으로 형사사법의 근본적 패러다임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논의에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전망 아래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신속하고 적절하게 국내 형사사법제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공관이나 국제기구에 파견되는 법무협력관 현황을 전면 재검토해 최소한 주요 이슈가 논의되는 OECD, 유럽연합, 유럽평의회에는 인력을 추가해 관련 사항을 체계적으로 챙겨 나갈 필요가 있다”며 “제도적 차원에서도 형법과 형사소송법, 기타 특별법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국제형사 관련 규정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형사관할, 국제형사사법공조, 형사증거법 등은 물론 글로벌 이슈가 된 반부패, 조직범죄, 국제자금세탁, 국외탈세, 해외도피 범죄수익 환수, 사이버범죄, 반인륜범죄 등에 대한 대응도 적절히 정책과 입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와 형사증거법도 범죄의 세계화 관점에서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외국에 있는 증인이나 참고인, 감정증인을 우리 법정에 모두 불러올 수는 없기 때문. 공판중심주의의 정신과 실질을 모두 살리면서도, 형사증거법의 결함으로 주요 범죄자가 처벌을 면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책에는 검찰에 대한 쓴소리도 담겼다. 그는 “검찰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검사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정년이나 채우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검사들을 적절히 퇴진시킬 수 있는 장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의 독립과 책임의 조화, 정권교체에도 흔들림 없이 뛰어난 검사들이 전문성과 경륜을 살려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사제도 개혁이 숙제”라는 주장이다.

그는 후배 검사들에게 “정의는 천천히 세우는 것”이라며 “정의감은 검사의 기본 덕목이지만 그 열기가 너무 강하면 냉철함과 균형 감각을 상실하여 이것저것 정신없이 손대다가 아무런 성과도 못 거두고 좌절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검사는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형벌권을 집행하는 법집행기관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검찰의 권한을 권력으로 생각하여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히거나 정치적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 태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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