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부응하다 체계 정합성 떨어지고 위헌적 법 제정”
“새 정부, 정치 배제하고 사심 없이 바른 방향 잡아야”

[법률방송뉴스]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정웅석 교수)가 국민의힘 김웅 국회의원과 함께 지난 11일 '새 정부 출범-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진단과 입법방향'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형사법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으로 인해 변화한 형사법 체계와 수사 실무를 진단하고, 새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풀어낼 과제에 대해 제언했습니다.

김웅 국회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사권이 권력자의 통치 편의와 반대파 탄압을 위해 오·남용되어온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고, 국가의 수사권으로부터 개인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라며 “‘검찰개혁’을 외치며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형사사법제도는 한순간에 퇴행했고 결과는 참담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의제기, 보완수사요구, 재수사요청 등의 제도적 장치들은 유능한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도구가 되어버렸고, 법을 잘 모르거나 가진 게 없는 국민들은 점점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 나가는 결과가 됐다”라고 평가하는 한편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기 위해 검찰개혁을 한다고 주장했으면서, 공수처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부여하는 모순을 보였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이제 한국의 형사사법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보는 실무가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고소 접수가 제대로 안 된다, 불송치 사유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사건종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란 평가는 이제 법학계와 법실무계에서 정설이 되었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정 회장은 “올해부터 검찰조서의 증거능력 강화로 공판정 사용이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검찰조서에 의지한 재판실무도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대륙법계 사법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 수사구조상 검찰의 사법기관성을 더 강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종국적인 해결방안”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하태훈 원장은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개혁 입법이 완성될 당시에는 의회 지형에서 여당이 압도적 다수였고 국민적 지지도 높았지만, 그 다수는 총선 당시 유권자의 표심일 뿐 4년 내내 고정불변이 아닌데다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따라 입법적 다수가 변할 수 있다”라고 짚으며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점에 국민 다수가 여전히 검찰개혁의 성과를 지지하는지, 아니면 시행상 드러난 문제점의 개선을 원하는지, 어떻게 법과 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 원장은 또한 “수사권조정 논의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거나, 예상했지만 수사권을 누가 갖느냐에 대한 큰 논의에 묻혀버렸던 문제점을 형사사법의 효율성과 인권보장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점검해야 보아야 한다”면서 “법을 제·개정하거나 제도를 도입할 때도 그렇지만 있는 법·제도를 폐지할 때는 더 설득력 있는 이유와 근거로 논증해야 하며, 실체도 불분명한 여론에 기대어 또 급속한 사회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려다 보면 체계 정합성도 떨어지고 위헌적인 법이 제정될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 “사법권력이 정치권 눈치 살필 때, 사회는 진흙탕에 빠져든다”

김일수 명예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문민정치가 물꼬를 튼 지 벌써 3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오늘날 우리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경제강국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정치적으로 권위주의 시대는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갑질하는 정치권력’을 지목했습니다.

그는 “우리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갱신 및 내실화를 통해 응고된 권위주의의 우상을 깨뜨려 버리는 일”이라며 “특히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에 치우쳐 사법이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게 되고, 검찰·경찰 권력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정도에 이르면 사법의 권위와 정의로운 법질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실추되고, 사회는 점점 진흙탕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 명예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상 검찰제도는 유럽의 개혁된 형사소송법의 정신을 이어받았습니다. 따라서 검찰은 법관의 재판권 행사에 앞서 수사의 종결과 공소제기 단계에서 법관과 유사한 법적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객관의무’입니다. 즉, 검찰은 피의자 및 피고인의 인권보장과 법의 수호자로서 법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법기관의 지위에 놓여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명예교수는 “법관제도와 경찰제도보다 늦게 등장한 이른바 개혁된 법제도의 산물에 해당하는 검찰제도는, 법치국가와 정법(正法)이라는 이념의 수호자로서 사법기관성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법의 희망은 강한 자의 팔에 힘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라 법의 목적인 인간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안전을 위해 강한 자의 팔을 법적 통제와 견제 아래 묶어두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수사기관들이 빠지기 쉬운 정치적인 편향성과 국민 경시적인 권위주의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과거 한 때의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처럼, 또 다른 경찰공화국이나 공수처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되살아나거나 인구에 회자할 것”이고 경계하면서, “강한 힘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일수록 국민 각사람 앞에 겸손하고 낮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검찰 개혁 명분 아래 잘 돌아가던 수사체계만 망가뜨렸다”

검찰 재직 당시 증권범죄합수단장을 지낸 법무법인 화우 김영기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조정에 대해 “그 목적을 검찰의 힘 빼기에 두었으면서 이를 개혁으로 포장했고, 절차적으로는 소수정당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유인책까지 동원하여 관련 법률을 국회 통과시켰으며, 내용상으로도 수사사법에 대한 철학 없이 검찰의 수사권한을 그저 경찰에 쪼개주는 방식으로 복잡하고 조악한 제도를 고안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수사권조정’은 국민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에도, 검찰개혁의 명분 아래 나름 잘 돌아가던 수사체계만 망가뜨렸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라고 혹평했습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2021년 1월 1일 자 개정 법률 시행 이후 수사 현실은 ▲검찰의 직접수사개시 범위 제한 및 사경 수사지휘 폐지 ▲경찰의 불송치 결정 등 종결권한 인정 ▲검찰의 사경수사에 대한 보충적 개입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이전 제도 아래서 검사 생활을 하다가 개정 후에는 변호사로서 변화한 수사시스템을 경험하고 있다는 그는, 개정 전후를 비교하면서 “개정제도 이후에는 ‘수사가 갈 곳을 잃어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검찰은 사건을 경찰로 넘기는데 점점 익숙해져 가고, 경찰은 밀려드는 사건을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로 허덕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일선에서 변호를 하다 보면 사건당사자가 고소인이건 피의자이건 경찰사건에 대해 검찰이 한 번 더 수사해주기를 원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면서 “그러나 제도가 변경된 이후부터는 검찰의 직접 보강수사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데, 검사가 나서서 경찰 사건을 설거지하기를 꺼리는 검찰 내부 분위기도 영향이 있겠지만, 제도적으로도 ‘보완수사가 필요한 경우 사경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규정한 수사준칙 제59조 제1항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이 사경에 보완수사 요구를 하면 그것도 문제라는 게 김 변호사의 말입니다. 한번 불송치 결정을 했던 경찰수사관이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 성의 있게 사건을 다시 수사해줄 리 만무하고, 수사가 지연되면서 피해구제의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피해자에게는 이 모두가 불이익을 넘어 고통이라는 게 그의 의견입니다.

한편 검사들은 업무적으로 확실히 편해졌다는 평가입니다. 대검찰청 보도자료에 따르더라도 검사들의 6개월 초과 장기미제 건수는 연말 기준 2020년 4,693건보다 2021년 2,503건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검사들이 편안해진 대신 국민들이 권리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면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어정쩡한 제도로 인해 사건이 검찰과 경찰을 표류하는 사이 실체규명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워지고, 검경 모두 자신들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는 속내를 밝혔습니다.

김 변호사는 “개혁을 했는데 과거 수사체제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피해를 국민이 새롭게 경험하게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검경 간 수사권한 분배는 국민에 대한 사법서비스의 문제이지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나 공정한 인사’와 별로 관련이 없는 아젠다(agenda)”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의 확보’이며 이는 검사들에 대한 공정한 인사제도와 합리적 인사를 통해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새 정부는 정치를 철저히 배제하고 올바른 방향성부터 설정한 후 관련 대통령령과 법률 규정에 대한 순차적 보완입법을 사심 없이 이루기를 기대한다”라며 “검찰과 경찰 사이에서 사건수사가 표류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검사의 지휘체제를 다시 도입하고, 공소권행사의 주체인 검사가 수사결과에 최종 책임을 분명히 지게 하며, 지휘체제 안에서 불송치, 수사중지 등 경찰의 종결권한을 보장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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