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등과 관련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최지희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최지희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더 크라운’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작품으로 영국 왕실에 대한 섬세한 고증으로 인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더 크라운’에서는 왕실이 껄끄러워하는 사실들도 그대로 연출하고 있는데, 특히 다이애나가 섭식장애 때문에 구토를 하는 장면이나 찰스 왕세자가 내연관계였던 카밀라와 외도를 하는 장면 등이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에 2020년경 영국의 문화장관은 넷플릭스에 ‘더 크라운’이 허구의 드라마라는 사실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넷플릭스는 이를 거부한 일이 있기도 하였죠.

역사적 인물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영화적 장치로 인하여 당해 인물 또는 그 유족들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사실왜곡을 하였다는 비난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숨진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작품을 두고, 김훈 중위의 유족이 제작사를 상대로 김훈 중위와 유족의 명예가 훼손된다며 영화제작·상영금지 등을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앞서 언급한 김훈 중위 의문사 영화 사건에서 법원은, “영화에서 甲 중위로 특정되는 인물이 乙의 주장과 달리 군 내부 부조리와 연관되어 사망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고 하여도 이러한 묘사가 상업영화의 예술·표현의 자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등 甲 중위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후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부족한 점, 영화에서 乙로 특정되는 인물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부분도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비추어 일부 허구적인 장면만으로 乙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상업영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되어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보전권리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대법원 2019. 3. 6.자 2018마6721 결정)”며 유족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관련 인물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에 따른 형사적 처벌, 제작자 등을 상대로 한 제작금지나 상영금지 등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원은 이 경우 피해자의 명예와 표현가치를 이익형량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보다 더 우월한 가치에 있을 것을 요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팩션(faction) 영화나 드라마는 사실과 허구가 빚어낸 즐거움으로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므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침해하는 것은 당연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나, 세부적 내용에 있어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의 성립을 쉽게 인정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므로 ‘팩션’ 작품에서의 명예훼손 논란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대중들이 다양한 팩션 작품을 즐기고 또 대중들로부터 팩션 작품이 지속적인 인기를 얻기 위하여는, 시청자와 제작사 모두 상대방이 가지는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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