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法)이다] 'MZ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청년층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변화에 유연하며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법(法)이다'는 이런 MZ세대 청년변호사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법과 세상, 인생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출처=네이버영화
출처=네이버영화

눈 깜짝 할 새 설 명절이 지났다. 필자는 부모님이 계신 수원 화성 인근의 본가를 다녀왔다. 인근에는 사도세자와 정조를 모신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2015년 개봉했던 송강호, 유아인 주연의 영화 ‘사도’를 문득 찾아 관람하였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온 국민이 아는 가장 비극적인 역사이자 가족사(史)이다. 영화 ‘사도’ 역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해 파국에 치닫게 되는 과정을 부자(父子)의 관점에서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였소."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마지막 독백에서 필자는 임오화변의 처음과 끝을 보았다. 사도세자가 오랜 울증과 조현병에 미쳐 많은 내관과 궁녀들을 살해하고, 영조를 시해하려했던 사실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 영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필자의 생각에, 영조는 명백한 아동학대범이다. 현행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는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영조실록부터 승정원일기, 한중록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은 영조가 갓난쟁이인 세자에게 했던 수많은 행위들이 그야말로 ‘아동학대’였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에 나타난 세자에 대한 혹독한 조기교육, 가학적 대리청정이나 반복된 양위파동 에피소드만으로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조선의 국법에 자결이라는 형벌도 있습니까!” 영조가 역모에 대한 처벌로써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자 사도세자가 내뱉은 말이다. 맞다. 당시 조선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자결이라는 형벌도 없을뿐더러 아동학대를 저지른 왕을 처벌하거나 제재하는 법도 없었다. 그 결과,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다. 

다시 말하지만 역심을 품었던 사도세자를 일방적으로 비호하거나 동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경국대전에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과 같은 법이 있었더라면 사도세자가 영조의 시해를 기도할 일도 뒤주에 갇혀 죽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에도 오늘날의 아동학대방지법이 있었다면 영조는 아동복지법 제17조에서 금지한 심각한 ‘신체적, 정서적 학대행위’를 행한 것이자 동시에 ‘보호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상습적 아동학대범죄자로서 아동학대처벌법 제4조 내지 제6조에 따라 최소 수년이상의 징역형으로 가중처벌되었을 것이다{물론 영조가 역적(내란 미수~예비,음모)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것이 당시의 정당한 사법권 행사로서 살인죄나 아동학대살해, 치사죄가 성립하는지는 별론으로 한다}. 

판타지 같은 생각이지만, 조선이 ‘짐이 곧 국가’인 절대왕정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 있는 군주제 정도로서 오늘날의 아동학대방지법이 있었다면, 대소신료들의 아동학대범죄 신고에 따라 사도세자의 아동학대 현장에 출동하여(제10조, 제11조), 사도세자를 즉시 영조와 격리하여 보호,치료시설로 인도하는 등의 응급조치를 하고(제12조), 재발방지를 위한 영조의 접근금지, 친권 정지 등의 임시조치들이 이뤄지며(제19조), 사도세자에 대한 보호처분(제36조)과 피해아동보호명령(제47조) 등을 통해 임오화변의 싹을 미연에 잘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영조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형조판서의 친권상실청구(제9조)를 통해 영조의 아들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그림과 활쏘기를 좋아하는 한 명의 소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는 오늘날에 어떤 교훈을 줄 때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온다. 조선의 경국대전보다 오늘의 아동학대방지법은 더욱 위대하고 훌륭해졌다. 하지만 2020년의 ‘정인이 사건’처럼 오늘날에도 영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잔혹한 아동학대범죄들이 넘쳐나고, 경찰과 지자체, 복지기관 등 유관기관의 미흡한 대응으로 우리의 소중한 아동들이 학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이에 사도세자의 비극적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건의 아동학대 사례도 발생하지 않을 때까지 ‘일신우일신’의 마음으로 관련 정책과 제도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필자 역시 기회가 닿는대로 아동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노력에 동참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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