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정진욱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정진욱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법률방송뉴스] '오징어 게임(squid game)'은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에서 1위를 달성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배우들의 SNS 팔로워도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였으며, 오징어 게임에 나온 딱지치기, 달고나 게임, 각종 대화와 장면 등이 밈(meme)되어 전 세계에서 공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면 박지성, 손흥민, 기생충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보아도 될까요?

필자도 추석 연휴 기간에 오징어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시청하였습니다. 주인공인 이정재(성기훈 역)는 구조조정으로 실직하고, 시장통에서 일하는 노모 밑에서 얹혀살면서 경마와 도박에만 힘을 쏟는 한마디로 ‘오징어’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도박 등으로 인한 채무도 상당하여 사채업자들로부터 신체 포기각서에도 동의해버린 상황이었죠. 그러던 그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공유(양복차림의 남자 역)에게 딱지치기 게임 제안을 받게 됩니다. 딱지치기 게임의 규칙은 '각자 딱지를 선택한 후, 딱지를 넘기는 사람이 10만 원을 받는 것'으로 매우 간단합니다.

얼핏 보면 공정해 보이는 딱지치기 게임이지만, 사실 공유는 딱지치기 게임에 상당히 익숙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할 인원을 가능한 최대로 늘려야 하는 역할이었으므로 다른 예비 참가자들과도 많은 딱지치기를 해봤을 테니깐요.

예상대로 공유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채무가 상당하여 장기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이정재에게는 수중에 10만 원조차 없습니다. 이에 공유가 따귀를 때리면서 ‘10만 원이 없으면 따귀 한대로 대신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이미 얼마 전에 사채업자들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은 이정재에게 따귀 한 대쯤은 거뜬했습니다. 수 없는 연패 끝에 이정재는 겨우 공유의 딱지를 넘겼고, 10만 원을 얻습니다. 이정재에게 10만 원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기에 이후로도 몇 판을 계속 진행하였고, 그는 쏠쏠한 재미를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때 이정재의 뺨을 때린 공유는 폭행죄 등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공유는 분명 이정재의 뺨을 수십 대 때렸습니다만, 이는 형법상 허용된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여 폭행죄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로,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① 형법상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가 ②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위법성을 조각(배제)할 만한 사유가 없는가 ③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성 조각 사유가 없더라도 심신미약과 같은 상태여서 책임능력이 없었는가를 순서대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공유는 이정재의 뺨을 분명 수십 대 두들겼으므로 형법상 폭행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함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이정재가 뺨을 맞을 때, 10만 원을 내는 대신 뺨을 맞는 것을 승낙하였다는 사정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정재가 보유한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법익이 훼손되었을지라도 형법 제24조에 따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피해자인 이정재의 승낙에 의해 법익을 침해한 공유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복싱, UFC와 같은 폭력적인 격투경기에서 분명히 상당한 수의 폭행과 상해가 이뤄짐에도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격투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자신의 신체가 훼손되는 현상에 대해 동의·승낙한 것이기에 벌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자신에게 붙은 잡귀를 물리쳐 달라는 A의 부탁을 받고, 몸에서 잡귀를 물리친다며 A의 뺨 등을 때리고, 팔과 다리를 붙잡아 배와 가슴을 손과 무릎으로 힘껏 누르고 밟는 등의 심각한 폭행행위를 하여 결과적으로 사망을 초래한 안수기도 사건에서, 『형법 제24조의 규정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는 피해자의 승낙은 개인적 법익을 훼손하는 경우에 법률상 이를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의 승낙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 승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대법원 1985. 12. 10. 선고 85도1892 판결).』라고 판시하여 그 제한을 두었습니다.

즉, 폭행이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를 정도로 심하거나, 보험사기 목적 상해 혹은 병역기피 목적 상해라면 만약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더라도 그 승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어서 형법 제24조에도 불구하고, 처벌되는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공유와 이정재는 딱지치기라는 게임에 승낙하였고, 딱지치기 게임이 보험사기나 병역기피와 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운바, 딱지치기 게임으로 인한 폭행은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위법성 조각사유로서의 피해자의 승낙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으며(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5도8074 판결), 그 철회의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기에 이정재는 언제든지 폭행의 승낙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도9962 판결).

한편, 오징어 게임의 본 게임에 참가한 자들은 분명히 자신이 사망할 것을 알고도 이를 동의하여 참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 주최자들이 자행한 살인까지도 위 피해자의 승낙법리가 적용되어 처벌받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이므로,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우리 법은 가장 존엄한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최고의 법익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는바, 혹여나 살인에 대한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다고 추정될지라도 이는 사회상규에 어긋나므로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다면, 폭행이나 상해죄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신체가 훼손되는 일은 회복하기 어려운 비가역적인 것이기에 아무리 피해자로부터 승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폭행하거나 상해하는 일을 벌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이정재가 뺨을 맞으면서 10만 원씩 버는 모습을 좋아하고 있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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