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관계 단절되지 않은 회사가 책임 다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

법률방송 그래픽=박태유
법률방송 그래픽=박태유

[법률방송뉴스] 해외로 파견된 노동자가 현지 법인에서 임금 체불을 당했다면 본사에 지급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전적(轉籍)과 근로관계에 관한 법리를 재확인한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파견 노동자 A씨 등이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인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의 상고심에서 STX 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고 오늘(27일) 밝혔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 등은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STX조선해양 등 계열사에 입사한 뒤 인사명령을 받고 2007년부터 2013년까지 STX의 중국 현지 법인에서 근무했습니다.

A씨 등의 본사는 연말마다 직원들에게 당해연도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지급해왔는데,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2009년부터는 중국 현지 법인이 임금과 중간정산 퇴직금 등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현지 법인의 자금사정 악화로 임금이 체불되면서 파견 노동자들은 이듬해까지 적게는 3천만원에서 많게는 8천만원까지 임금을 받지 못하고 본사에 복귀했습니다.

A씨 등에 대한 밀린 임금지급 의무는 본사에게 있는가, 현지 법인에게 있는가.

STX조선해양 측은 A씨 등이 원래 회사에서 퇴직하고 중국 현지 법인에 새로 고용됐으므로 '전적'에 해당해 임금 지급 의무는 본사가 아닌 현지 업체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적'은 노동자가 기존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사용자와 새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A씨 등은 중국 파견 당시 STX 측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사측도 '파견'이라고 하는 등 인사명령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맞섰습니다.

이와 관련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는 "이번 사건은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현지 법인에 '파견'을 보내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며 "전직이라는 것은 본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완전히 법률관계 정리한 뒤 그렇게 다른 회사로 가는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1심은 "미지급 임금 등이 발생할 당시 원고들은 STX조선해양의 지시에 따라 STX조선해양에 근로를 제공했다"며 STX 측에 체불 임금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반면 2심은 "원고들이 중국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STX 측에 근로 제공을 중단해 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1심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엇갈린 하급심 판결.

권 노무사는 "1심은 A씨 등이 실질적으로 STX에 사직서를 내지 않아 근로관계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여전한 소속은 STX라고 본 것이고, 2심은 중간에서부터 현지 법인에서 근로제공에 대한 임금지급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현지 법인과 근로관계가 완전히 형성된 걸로 본 것"이라고 하급심이 다르게 판단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STX 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STX 측은 원고들이 중국 현지 법인에서 제공한 근로에 임금 지급 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여지가 큰 반면, 근로계약의 해지에 관한 원고들과 STX조선해양 등의 객관적인 의사가 일치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원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 판단에 대해 권 노무사는 "대법원에서 실질적 근로관계를 중시해 판단했고 몇 년간 임금을 형식적으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회사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라며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전적'과 '근로관계'에 관한 법리를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양선응 노동법 전문 변호사(양선응 법률사무소)는 "전적은 기존의 근로관계를 합의해지하고 다른 기업과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하고, 따라서 유효한 전적이 이루어진 경우 종전 기업과의 근로관계는 단절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러나 전적이 아니라 기존 근로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단순 파견근로라면, 종전 기업이 임금 지급 등 근로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전적에 관한 이와 같은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A씨 등과 STX조선해양 국내 본사의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라며 "전적이 근로자에게 미치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적의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전적과 단순 파견근로의 구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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