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계약의 출발 전 해제와 적정 위약금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전 지구적인 팬데믹으로 관광 산업이 된서리를 맞은 지도 벌써 2년여에 가까워지고 있다. 주변에는 성년 이후 여행 중독자의 삶을 이어오다가 본의 아니게 발이 묶여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다. 천부적인 집순이인 필자마저도 인천국제공항의 매끈한 바닥에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그 느낌이 그리울 지경이니, 더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내달부터 시행 예정인 ‘위드(With)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를 앞두고 여행사 온라인 몰의 여행 관련 상품 판매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발맞춰 20일 대한항공이 19개월 만에 하와이 노선 운항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여행 욕구가 장기간 억압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해방감은 자칫 경솔한 선택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충동구매 말이다. 

충동적인 결정에 대한 후회 말고도 여행계약을 취소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9일 싱가포르에 대해 코로나19 여행권고 위험 등급을 3단계에서 최고 단계인 4단계로 격상했다. 만약 인근 국가로의 출국을 앞두고 이와 비슷한 소식을 접하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여행의 강행을 다시금 고려해 볼 터이다. 바이러스 걱정이 아니라도 일행의 갑작스러운 불참이나 단순 변심 등 오만 이유가 다 있을 테다.

숙고 끝에 출국이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취소를 결정한 소비자는 이제 여행사로부터 여행 대금을 돌려받고 싶다. 그런데 서명한 계약서를 보니 ‘여행개시 6일 전~출발 당일 취소 통보시 여행경비의 100%를 배상해야 합니다’라는 기재가 있다. 여행 대금 전액이 위약금이므로 돌려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언뜻 보기에도 부당하다. 여행사에 부당함을 알리고 싶은데, 무조건 생떼를 쓰는 모습으로 비치는 건 원치 않는다. 소비자는 무엇을 근거로 어떤 주장을 해야 할까? 

일단 ‘여행 3일 전부터는 (또는 여행 당일에는) 계약을 취소하실 수 없어요’라는 여행사 측 답변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 민법 제674조의3(여행 개시 전의 계약 해제) 본문엔 ‘여행자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에 의하면 여행자는 여행 직전까지 언제든지 여행사와의 계약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 여행사의 위 답변은 강행규정인 민법 제674조의3 본문에 위반되므로 효력이 없다고 말하면 된다.

다음으로 ‘해제하실 수는 있지만, 여행개시 6일 전부터 출발일까지 해제를 통보하시면 여행경비 전액(또는 80, 90%)이 위약금이 됩니다’라는 여행사의 주장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앞서 민법 제674조의3 본문은 계약 해제의 자유를 정하고 있지만 아무런 조건 없는 자유는 아니다. 같은 조 단서 규정엔 ‘다만, 여행자는 상대방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쓰여있다. 해제는 맘대로 하되, 여행사의 손해는 배상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의하면 여행사가 부과하는 위약금 그 자체는 정당하다. 문제는 여행요금의 ‘100%’라는 액수가 과연 적정한지다.

이때 소비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8조(손해배상액의 예정) 및 제9조(계약의 해제·해지) 제4호를 근거로 여행사가 주장하는 100% 위약금 조항은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위약금의 부과 그 자체가 무효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 지급한 여행요금의 전부(또는 대부분)을 위약금으로서 몰수하는 것이 무효라는 의미다.

일단 이렇게 무효를 주장했으니, 다음으로는 적정한 위약금이 얼마인지를 밝혀야 한다. '소비자기본법' 제16조 제2조, 제3항 및 '소비자기본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분쟁의 원활한 해결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고시한 합의 기준인 '소비자분쟁해결기준(국외여행)'은 여행자의 여행계약 해제 요청이 있을 때 기간별로 적정하다고 여겨지는 위약금 비율을 정해 놓았다. 구체적으로는 ①여행개시 30일 전까지는 계약금 전액 환급, ②여행개시 20일 전까지는 여행요금의 10%, ③여행개시 10일 전까지는 여행요금의 15%, ④여행개시 8일 전까지는 여행요금의 20%, ⑤여행개시 1일 전까지는 여행요금의 30%, ⑥여행 당일 통보시에는 여행요금의 50%가 적정 위약금이다. 그러니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여행 당일 단순 변심일지라도 출발 전에는 지급한 여행경비의 절반을 포기하고 여행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는 일응의 판단 잣대일 뿐 엄격하게 당사자를 구속하는 법규는 아니다. 여행업자는 여행자의 갑작스러운 취소 때문에 자신에게 발생한 손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만 있다면 이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을 돌려주면 된다. 다만 당사자 사이의 의견이 어긋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끝까지 합의하지 못한다면 결국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소액의 금액 때문에 법정을 들락거리고 싶지 않은 당사자들은 대체로 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한 합의에 동의한다.

변호사에게 상담 비용을 내거나, 소송을 맡기기엔 청구금액이 워낙 소액인 사건들이 많다. 사실상 우리 소비자가 대부분 마주하는 분쟁이 그렇다. 이럴 때, 오늘 필자가 알려드린 논리 구조가 유용하다. 상위법을 찾기 어렵다면 일단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샅샅이 살펴보시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소비자24’ 포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상 고객’ 누명도 벗고 내 주장에 확신도 얻을 수 있으니, 변호사가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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