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法)이다] 'MZ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청년층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변화에 유연하며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법(法)이다'는 이런 MZ세대 청년변호사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법과 세상, 인생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최자유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
최자유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

우리나라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채택하고 있기에, 우리나라 헌법에서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노력할 국가의 의무는 당연히 도출될 수 있다. 장애인은 사회적인 약자로서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 배려의 목적은 장애인을 주체적인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통합시키는 데에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장애인을 단지 수동적으로 보호를 해야 되는 대상이 아닌, 함께 사회를 살아나갈 구성원으로 만드는 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몫이지만,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수호하여 입법부와 행정부가 헌법 질서에 맞추어 행위하도록 하는 지침을 부여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우리 선조들은 장애인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도록 하였다. 홍대용은 담헌서에서 "소경은 점치는데로, 궁형당한 자는 문 지키는데로,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고,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듣지 못하는 사람과 생식기가 불완전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으며, 다리를 저는 사람은 그물을 떠서 살아갈 수 있지만 오직 중환자와 불구자는 구휼해줘야 한다."고 함으로써 국가의 적극적인 배려를 통하여 그들을 사회에 참여시키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가?

① 전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②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③ 헌법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④ 헌법 제34조 제1항에 따라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으며, ⑤ 같은 조 제2항에서는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하며, ⑥ 동조 5항에서는 신체장애자·질병·노령·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비록 장애인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헌법 제34조제5항의 신체장애자 등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경우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부분 뿐이지만, 헌법의 여러 조항들이 스스로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적 강자들이 아닌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작동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고려할 때 '모든 국민'을 언급한 부분을 근거로 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도출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같은 취지로 헌법 제34조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권리'를 해석함에 있어, 사회적 약자의 경우에는 개인 스스로가 자유행사의 실질적 조건을 갖추는데 어려움이 많으므로, 국가가 특히 이들에 대하여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헌재 2002.12.18. 선고 2002헌마52 결정)

그렇다면 과연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부여한 장애인 보호의 책무를 다 하고 있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장애인 복지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결정례는 단연 '저상버스 도입의무 불이행 사건'(헌재 2002.12.18. 선고 2002헌마52 결정) 일 것이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저상버스의 도입을 의무화 해달라고 청구한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헌법재판소는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해야 할 국가의 의무'에 대하여 다른 다양한 국가과제에 앞서서 최우선적인 배려를 요청할 수 없고, 나아가 헌법의 규범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의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국가의 행위의무를 도출할 수 없다"고 한다.

저상버스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단연 장애인의 '이동권' 이다. 이동권은 교통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간다. 사람은 서로 만나고 교류하며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나가는데, 이에 있어서 안전하고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는 것은 인격발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 것이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핵심적인 기본권의 한 부분인 '이동권'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단지 사회적 기본권의 한 유형으로만 파악하고, 이는 입법을 통하여서만 구체화될 수 있으며, 단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절한 배려를 요청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여 사법적인 심사를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대부분의 조치들은 모두 '사회적 기본권'의 영역에 포함될 뿐이고 사회적 기본권에 대하여 사법심사를 자제하는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사법적인 보호는 사실상 부정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동권'을 사회적 기본권으로 파악하더라도, 사회적 기본권을 해석함에 있어 층위를 구분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단계이론에 따라 직업의 자유 해석에 있어 3단계 이론을 채택하고 있다.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직업 행사의 자유, 주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 선택의 자유, 객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 선택의 자유로 분류하여 위헌심사의 기준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방법은 사회적 기본권의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사회적 기본권 모두에 대하여 일률적이고 객관적으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하였는지만 평가하여 사실상 사법자제를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기본권의 심사과정에서도 해당 기본권을 대상 집단의 인격발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지 아니면 부차적인 요소인지를 세밀하게 판단하여 그 심사 기준을 달리 정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한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인간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존재의의를 찾아가며,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인격발현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에 이를 인간의 존엄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본질적인 문제로 보아 엄격하게 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인간다운 최저생존보장을 위한 독자적 기본권'을 도출하면서, 여기에서 도출되는 물질적 급부 청구권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유지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배려 그리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참여여건도 포함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를 때 장애인의 '이동권'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유지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배려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지만, 아직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동권’에 대하여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점자형 선거공보 사건’(헌법재판소 2020.9.4. 2017헌마813 결정)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를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로 제한함으로써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제한받았다고 제기한 소송이다.

점자는 일반 활자와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약 2.5배 내지 3배 정도의 면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를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로 제한하게 되면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하여 33%~40% 정도의 정보만 취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국민들은 선거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운영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결정에서 “입법자는 시각장애인의 선거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입법형성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며,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제한은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소수자인 시각장애인의 권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필연적으로 다수를 대변할 수 밖에 없는 국회에 의하여 대변되기는 쉽지 아니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급적 개입을 하지 아니하겠다는 태도는 소수자 인권 보호의 보루로서의 헌법재판소의 태도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며,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장애인이 당당한 우리 사회의 통합의 주체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데에는 헌법재판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대한민국의 민의를 대변하는 최고기관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고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개입을 자제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소수자의 인권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헌법재판소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장애인들이 더욱 실효적으로 우리 사회에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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