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가치 감소·상실 초래만으로 배임죄 성립 어려워"

▲유재광 앵커= 일상생활에서 부딪칠 수 있는 생활법률 문제를 법제처 생활법령정보와 함께 알아보는 '알쏭달쏭 솔로몬의 판결', 오늘은 저당권 설정과 배임죄 관련 애기해 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왕성민 기자 나와있습니다. 왕 기자, 먼저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왕성민 기자= 네, 서울에 아파트 1채를 소유하고 있는 김무주씨는 사업 운영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급전이 필요해지자 친구인 나해자씨를 찾아가 “2억원을 빌려주면 아파트에 2순위로 저당권을 설명해 주겠다”고 말했는데요. 친구의 말을 믿은 나씨는 김씨에게 현금 2억원을 빌려줬습니다. 

그런데 약속과 달리 김씨는 5억원을 빌려준 A은행을 2순위 저당권자로 설정해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씨는 배신감에 김씨를 배임죄로 고소하려고 하는데, 법적으로 김씨에게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앵커= 나씨 입장에선 빌려준 돈을 떼일 수도 있는 일종의 뒤통수를 맞은 셈인데, 일단 배임죄 법 조항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기자= 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배임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항에 따라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야 하며, 이로 인해 자신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이익을 보게 하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손해를 입혀야 합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까다로운데, 이번 사안에서 핵심 쟁점은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이번 사안에서 핵심 쟁점은 돈을 빌린 김씨가 처리해주기로 나씨에게 약속한 근저당 설정이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느냐 여부입니다.

‘근저당 설정’이라는 사무가 있는데, 이게 돈을 빌려준 나씨가 해야 할, 즉 김씨 입장에선 ‘타인의 사무’가 되느냐, 김씨가 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해야 할 위치에 있는데 이행하지 않았느냐가 핵심 쟁점이 되는 사안입니다.    

▲앵커= 돈을 빌린 김씨는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네. 김씨는 저당권을 설정해 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업무일 뿐 ‘타인의 사무’가 아니기 때문에 형법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구성요건’은 형법상 금지되는 행위의 실질을 규정한 법률요건으로, 어떤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전에 갖춰야 하는 전제조건에 해당합니다.  

김씨는 나씨의 저당권을 설정해주지 않은 행위는 사인 간 이뤄진 채권채무 관계에서 생긴 문제일 뿐 형사상 배임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쉽게 말해 저당권을 설정해준다고 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 한 것으로 타인의 사무가 아닌 자기의 사무에 해당하는 만큼, 자기 할 일을 안 했다고 해서 배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앵커= 좀 어렵게도 보이는데, 관련한 법원 판례는 어떻게 돼 있나요. 

▲기자= 네 대법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 2011. 1. 20. 산거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즉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해석 범위를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해, 단순히 다른 사람의 일을 대행해 주거나 사적인 관계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준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 것입니다. 

▲앵커= 저당권 설정 관련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요. 

▲기자= 일단 저당권 설정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해 전원합의체 판결로 확립된 판단을 내놓았는데요.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채권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 했습니다(대법원 2020.6.18. 선고 2019도14340 판결) 

▲앵커= 이번 사건 관련해선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기자=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판단입니다. 관련해서 법제처도 “채무자가 저당권 설정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 채권자와의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제처는 “채무자가 제3자, 즉 다른 사람에게 아파트에 관한 저당권을 먼저 설정하거나 양도하는 등 담보가치를 감소·상실시키는 정도의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근저당 설정해줄게, 돈 좀 빌려줘” 하고 돈을 빌린 뒤 근저당을 설정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배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법제처는 다만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경우라면 매도인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므로, 중도금 수령 후 부동산을 이중매매 할 경우에는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앵커= 저당권 설정 약속을 어겼다고 무조건 ‘배임죄’에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판결 같은데, 저당권 설정 같은 건 좀 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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