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해당 여부는 도급 등 계약 형식 아닌 실질 여부 판단해야"

▲유재광 앵커= '법률구조공단 사용설명서', 오늘은 예능프로그램 음향 담당자가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왕성민 기자 나와 있습니다. 왕 기자, 먼저 어떤 상황인지 볼까요.

▲왕성민 기자= 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같은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무대 앞에서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관객들의 박수나 환호 등을 유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향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직업인데요. 박모씨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9년간 A엔터테인먼트사에서 이 음향 오퍼레이터로 일하다 퇴사를 했습니다.

박씨는 주로 KBS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방청객의 웃음박수' 등 각종 방송 효과음 작업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런데 박씨가 2019년 8월 일을 그만두자 A사 측은 박씨는 자기 회사 근로자가 아니었다고 고용관계를 부인하며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박씨는 법률구조공단 춘천지부의 도움을 받아 근로자성 확인 및 임금 지급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앵커= 9년 넘게 일했는데 직원이 아니라고 하면 박씨 입장에선 황당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단 박씨는 서면으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진 않았지만 A엔터테인먼트사 소속 직원들의 지휘와 감독을 받으면서 일을 했는데요.

입사할 때도 A사 팀장과 사장이 면접을 본 다음 구두로 채용통보를 했고, 방송국 시스템이 테잎 방식에서 디지털로 바뀌어 재택 근무가 허용되기 전까지 주로 KBS 신관 지하 1층 또는 지상 5층 음향작업실에서 근무했는데 근무에 사용했던 장비들도 모두 A회사 소유였습니다. 

A회사 직원들은 박씨의 출퇴근 관리도 하면서 병가나 외출을 승인하거나 재직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런데도 회사 직원이 아니라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어떤 점을 들어서 이같은 주장을 하는 건가요. 

▲기자= 회사 측은 우선 박씨와 고용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 PD가 제작한 영상물에 음향효과를 넣는 작업에 대해서만 '도급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해명했는데요. 다시 말해 박씨는 정식 채용된 것이 아니라 음향효과 작업만 개별적으로 외주를 맡은 것이고, 그동안 월말에 지급해온 급여는 용역보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밖에 A회사는 박씨가 근로자가 아니었다는 근거로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 ▲박씨가 음향 업무 외에 다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 ▲박씨 소득의 원천징수 세율이 개인사업자에게 적용되는 3.3%였다는 점 등을 들며 박씨의 근로자성을 부인했습니다.  

개인사업자에 적용하는 3.3% 세율을 원천징수한 만큼 박씨가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앵커= 그래서 사건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기자= 우선 공단은 퇴직금 지급의 전제가 되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종속적 근로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수집해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특히 A회사가 박씨의 근로 스케줄을 꼼꼼하게 관리하며 세세하게 업무를 지시했던 점을 강조했는데요. 

구체적으론 1개의 방송 프로그램마다 박씨와 같은 음향담당 직원이 3명씩 배정됐는데, 시간 별로 누가 어떤 영상을 작업할지 A회사에 보고한 뒤 일을 배정받았고, 비는 시간에도 항시 대기하며 별도의 업무지시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진술도 받아 제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A사가 박씨에게 상여금을 지급하고 유급휴가를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재직증명서와 퇴직증명서도 발급했던 사실을 강조하며 박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앵커= 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담당 재판부인 춘천지법은 일단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소득세율을 3.3%로 정한 것은 A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한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만으로 박씨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회사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전체적인 근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박씨는 A회사 소속 근로자로 인정되므로 A회사는 퇴직금 3천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해 박씨와 공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앵커= 해당 판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자= 소송을 대리한 공단의 박성태 변호사는 "특수한 근로 형태를 갖춘 방송 관계종사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서 논의될 수 있는 쟁점이 모두 등장했다"며 "방송 기술 발달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경우에도 근로자성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밝혔는데요.  

박 변호사는 그러면서 "예능 프로그램처럼 업무스케줄이 유동적인 경우에도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으며 외주 방송 제작사의 용역계약 주장을 모두 부인한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앵커= 방송 제작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 오늘 얘기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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