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소송 이야기 〈3〉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 전쟁의 서막을 열다
국제소송 이야기 〈3〉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 전쟁의 서막을 열다
  •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 승인 2021.06.2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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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의 국제법 이야기] 김익태 미국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미국 형사법원 국선전담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원,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 등을 지낸 외국법자문사입니다. 복잡한 국제 법적 분쟁(국제 형사, 민사, 가사 등)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을 실무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변호사이자 주목받는 SF 판타지 소설가인 켄 리우의 소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는 아이를 버리고 대도시로 가서, 불로장생의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의 대표가 된 미혼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100세 가까운 노인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젊은 외모를 지닌 주인공이 카페에 앉아 있는데, 한 남자가 접근한다. 막노동에 거칠어진 손을 지닌 중년의 남자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낀 그녀는, 자신보다 늙어 보이는 그 남자가 실은 자신이 고향에 두고 왔던 아들임을 알게 된다. 다소 황당한 스토리이기는 하나, 요즘 뜨는 바이오 산업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의학의 발달이 인간의 수명을 언제까지 연장할지 가늠할 수 없으며, 불로장생이라는 바벨탑이 결국 완성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천하를 제패했으나, 사기꾼 서복(徐福)의 불로초를 기다리다 요절한 진시황이 억울할 뿐이다.

화성 이주 계획을 위해 설립된 스페이스 X와 테슬라 등의 기업 대표인 일론 머스크의 꿈은 가까운 시일에 현실화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머스크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면, 어쩌면 그는 지구인들을 납치하기 위해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며, 비트코인의 개발자로 알려진 정체불명의 '사토시 나카모토' 또한, 머스크와 한패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고도 지능의 외계인이 창조한 가상현실(simulation)일 수 있다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올 법한 얘기를 공공연히 내뱉는 머스크이니 나의 이런 엉뚱한 상상은 커져만 간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세상을 폭풍 속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암호화폐 등은 SF 영화의 많은 내용들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관론자들은 구글과 같은 회사가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몰살시키는 스카이 넷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전혀 근거없는 말도 아니다. 내가 지난 몇 년간 다녔던 음식점과 술집, 미술관과 여행지를 모두 알려주는 구글의 정보력이라면 인류의 모든 정보를 소유하는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윤리와 법규가 개인정보를 보호한다지만, 그 속도는 느리다. 법은 항상 기술력의 발전을 뒷북치며 따라가지, 선도하여 안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2000년대 초반에도, 세상은, 인터넷 기반 '닷컴(.com)'의 등장으로 요동쳤다. 닷컴 회사들이 미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 광고 배너를 도배할 때였다. 그 후 거품은 빠지고, 신기술은 자리를 잡았다. 그 후 20년 동안, 신기술은 법적 소송의 양상도 바꾸었다.

지난 연재에 소개했던, 국제 소송 단계의 디스커버리(Discovery)라는 자료공개 과정은 이제 전자증거 절차인 '이-디스커버리(E-Discovery)'가 대체하고 있다. 자료와 교신(communication)이 모두 전산화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가 오래된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파일들을 삭제하듯이, 기업 또한, 일정한 시점을 두고 이메일이나 전산자료들을 폐기한다. 한데, 소송이 예상되는 시점에 이러한 자료들을 파기한다면, 이는 미국 연방민사소송절차법의 위반으로 이어지게 되며 소송의 각하로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미 연방민사소송절차법 제37조,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Rule 37). 디스커버리도 생소한 우리에게 '이-디스커버리'의 관리는 더욱 생소하다.

소송이 개시되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거의 모든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메일부터 시작해서 전화나 앱을 통한 모든 톡 메시지들을 언제 다 검토해서, 불필요한 자료는 최대한 제공하지 않고, 연관성이 명확한 자료들만 제공할 수 있을까? 법적 전문성이 부족한 실무자의 고민은 깊어가고, 이러한 고민을 과학기술이 해결해 준다. 전자증거 중에서 연관성이 있는 자료들만 걸러내는 코딩 기술이 존재하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성업 중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가능한 것이다. 기술력에도 가속이 붙는지, 20년 전 인터넷 기술에 기반하여 등장한 닷컴 회사들을 이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 대신 기술력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소송의 더 많은 부분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리서치 중심의 기존의 인공지능이, 이제는 소장이나 서면을 대신 써주기도 한다. 미국의 대형 법률 리서치 회사인 W사는 인공지능에 기반해서,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고비용이지만,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일 수 있다. 또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송의 전략을 짜고, 판사의 성향을 분석하고 기존 판결들의 경향을 분석하여, 소송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리걸 테크(Legal Tech)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있다. 바야흐로 인간을 대신하여 로봇들이 싸우는 터미네이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다. 현재로서는 20년 전 닷컴 거품 때처럼 투기성이 강한 영역이지만, 코로나가 앞당긴 비대면 사회의 주인공의 역할을 할 것이다. 실례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하여 기존의 은행을 대신하는 핀테크(Fintech·Financial Technology) 금융회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와 같은 온라인 은행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비대면 금융 업무이니 자연스레 신분 확인과 불법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들도 발달하며,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등장하여 전 세계를 무대로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핀테크 회사에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창업한 한국 회사들에게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법률자문을 했다. 고객확인(KYC·Know Your Customer)과, 테러리스트와 적성 국가에 대한 자금흐름을 차단하고 돈세탁을 방지하는(AML·Anti Money Laundering)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의 창업자들은 모두 2030 IT 청년 세대이다. 핀테크 관련 법령들은 여전히 기존의 오프라인 금융업에 기반하여 허술하지만, 점점 정교화될 것이며, 이러한 기술력이 얼마나 안전하게 금융업무에 결합되어 작동하는가 하는 것은 금융소송의 쟁점이 될 것이다. 즉 신뢰할 만한 기술을 사용하고, 정기적인 내부 점검과 독립 감사를 통해 법률적 문제를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신의성실(Due Diligence)을 다하는가 여부가 금융회사의 과실 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법적 요소가 될 것이다. 전 세계 자금의 3분의 2 이상이 흘러가는 뉴욕주의 경우, 한 발 앞선 법령을 제정하여 주 차원에서 신의성실에 대한 보증(certification)을 제출하게 하는 거래감독보증(Transaction Monitoring Certification 504)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부 주도의 법률 규범은 곧 대중적인 법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머스크의 변덕에도 암호화폐는 기존화폐와 함께 결제수단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각국 정부는 기존 화폐를 전자화시키겠지만, 전자화폐는 블록체인 기술력에 기반하여 쉽게 퇴장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또한 전자상거래가 블록체인 기반에서 이루어지면, 그 기록은 블록에 영구히 남고 분산하여 보관되므로, 디스커버리 자료의 진정성이나 신빙성을 높여줄 것이다. 기존의 전자증거와는 또 다른 형식의 전자증거들이 제시될 것이며, 또한 해킹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대금결재가 암호화폐로 이루어지게 될 수 있다. 2016년 해커에 속아 240억원을 해커의 계좌로 이체한 LG화학 사기 송금 사건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는 어렵게 되었다.

예정된 수순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환경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개인적으로는 국제소송 때문에 비행기 타고 시차도 다른 외국에 가지 않게 되어서 편리한 점도 있다. 미국의 법원 시간에 맞추어 영상 출두하면 된다. 또한 그동안 변호사 사무실에서 마주보고 진행하던, 디스커버리의 중요한 부분인 대인 질의(Deposition)도 영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다가 인공지능 판사 앞에서 영상으로 재판하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다소 발칙한 상상이지만, 팬데믹으로 현실화된 비대면 기술력은 이러한 발칙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김익태 법무법인 도담 미국변호사 webmaster@lt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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