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사용됐지만... 대법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아냐"
"범죄 성립의 인식 여부 판단해야"... 경제적 약자 배려한 판례

▲유재광 앵커= ‘이윤우 변호사의 시사법률’, 오늘은 보이스피싱과 체크카드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변호사님 오늘은 어떤 내용인가요. 

▲이윤우 변호사(IBS 공동법률사무소)= 네 안녕하세요. 최근 대출이 급했던 어떤 사람이 대출 광고를 보고 빚을 내기 위해 한 대부업체에 자신의 체크카드를 내주었는데요. 해당 카드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됐지만, 이 경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출을 받고자 체크카드를 건네주는 것이 어떤 경우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인정되는지, 또는 인정되지 않는지를 자세히 알려드리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앵커= 일단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체크카드를 넘겨주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인가 보네요. 

▲이윤우 변호사= 네, 현재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2호에서는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동법 제49조 제4항 제2호에서는 이를 위반하여 접근매체를 대여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접근매체의 대여란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접근매체 이용자의 관리감독 없이 접근매체를 사용해 전자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접근매체를 빌려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대가란 접근매체 대여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말합니다. 

대출을 받기 위해 대부업체에 체크카드를 건네준 행위는 대출이라는 장래의 무형적 대가를 위해 접근매체 즉 체크카드를 대여해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접근매체는 체크카드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체크카드 대여 자체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윤우 변호사= 우선 전자금융거래법은 전자금융 거래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해서 전자금융 거래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것인데, 여기서는 체크카드를 양도하는 행위 자체를 전자금융 거래의 안정과 신뢰를 침해하는 범죄행위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체크카드 대여가 보이스피싱 등 2차 범행의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큰 만큼 실제 대출을 받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체크카드를 건네준 행위 자체가 대출 받을 기회를 얻거나 약속 받는 것과 대응하는 관계, 즉 대가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판시한바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보이스피싱 업체에 속아서 체크카드를 넘겨준 경우에는 대출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윤우 변호사= 네, 그동안 말씀하신 지적과 비판이 꽤 많았습니다. 대출을 해준다고 접촉하는 자가 대출을 받기 위해 체크카드를 내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 대출이 어렵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이를 거절하기가 매우 곤란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아가 이것이 보이스피싱 등 2차 범행도구로 사용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체크카드를 교부한 자도 단순히 대출을 받기 위해서 체크카드를 준 것 뿐이지 실제로는 범죄조직에 기망 당해서 체크카드를 교부한 것인데요. 그래서 실제로 대출을 받은 것도 아니고 대출받을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대출을 받는다는 대가성’을 인정해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본 기존 판례들에 대해서 법조계에서 많은 비판들이 있었습니다. 

▲앵커= 그럼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존 판례에 대한 비판을 일정부분 반영해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나요. 

▲이윤우 변호사= 원칙적으로 보면 기존 대법원 판례의 태도를 완전히 변경한 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는 접근매체 대여의 의미, 즉 대가의 의미에 관해서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다만 범죄성립의 인식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추가적으로 제시 하였는데요. 

즉,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자는 접근매체 대여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한다는 인식이 존재해야만 범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겁니다. 

▲앵커= 내용이 조금 어려운데, 더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이윤우 변호사= 이번 판례가 나오기 전에는 사실 체크카드를 대여하는 자가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았든, 아니든 대여자체로 대가성이 인정돼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고요. 쉽게 말해 결과적으로 속았다고 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대출받을 기회를 부여받았다면. 그것만으로 대가성이 인정되었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례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기망당해서 체크카드를 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원천적으로 대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체크카드 대여의 대가성을 기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다시 한 번 판단해보자는 것이 취지로 보입니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례는 기존 판례들이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약속하면서 체크카드를 교부했다면 곧바로 대가관계를 인정한 점에서 나아가 범죄 단체의 기망으로 체크카드를 교부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체크카드 교부 당시 대출 대가로 접근매체를 건네준 것인지, 그런 인식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서 대가성을 인정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단순히 범죄단체의 기망에 의해 체크카드를 교부했을 경우에는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고, 2차 범죄에 이용된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등의 사유를 입증해서 무죄를 받아낼 수 있다면 사실 경제적 약자들과 대출받는 자들, 곤란한 자들을 배려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판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너무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건데, 어쨌든 체크카드 대여. 이건 무조건 하면 안 되는 거죠.

▲이윤우 변호사= 그렇습니다. 앞서 설명 드렸다시피 이번 대법원 판결로 체크카드 대여의 대가성에 대해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대출을 받으려는 자가 억울하게 전과자가 되는 것을 다소 막을 수 있게 됐지만, 앞서 말씀드린 인식 여부 등 그런 것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유죄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아무리 대출이 급하더라도 대부업체에서 접근매체, 즉 체크카드의 교부를 요구하는 경우엔 단순히 대출이 아니라 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중요 범죄의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함부로 체크카드를 교부해선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아무튼 남의 궁박한 처지 이용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이 더 엄하게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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