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고의 인정되지만 전파가능성 등 없어... 무죄"
"범죄사실 찍은 프로필 사진 자체에 대해선 판단 안 해"

▲유재광 앵커= 아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지칭해서 "저 사람 범죄자다"하는 SNS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명예훼손에 해당할까요. '판결의 재구성', 장한지 기자와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단 어떤 사건인지 내용부터 볼까요.

▲기자= 총 3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헷갈릴 수 있어서 모두 가명을 사용하겠습니다. 김선혜씨는 동서지간인 정수영씨와 지난 2019년부터 상속재산 분할 문제로 잦은 다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3자인 박현진씨가 등장하는데, 박현진씨는 정수영씨의 직장동료입니다. 김선혜씨와 박현진씨는 아무런 친분 관계는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2019년 6월에 정수영씨가 김선혜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김선혜씨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부러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한 정수영씨는 함께 있던 박현진씨의 휴대폰으로 김선혜씨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하고 둘은 또 다퉜습니다. 이 와중에 휴대폰을 빌려준 박현진씨도 김선혜씨와 얼떨결에 통화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앵커= 정리하면, 김선혜씨와 정수영씨는 동서지간인데 재산 문제로 다툼이 있고, 정수영씨 직장동료인 박현진씨 휴대폰으로 두 사람이 말다툼을 했고 이 와중에 박현진씨도 말려들었다, 이런 내용인데, 그래서 그 후에 어떻게 됐나요.

▲기자= 이후 김선혜씨가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지난해 정수영씨를 고소했고, 김선혜씨는 정수영씨가 구약식 처분 재판을 받게 됐다는 고소·고발사건 처분결과 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정수영씨를 싫어하는 김선혜씨는 이 처분결과 통보서를 찍어서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휴대폰을 빌려줬던 박현진씨에게 "이렇게 죄지은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서야 되겠냐"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게 명예훼손에 해당하느냐 여부가 쟁점이 되는 상황입니다.

▲앵커= 약간 특이한 상황이긴 한 것 같은데, 재판에선 어떤 부분이 쟁점이 됐나요.

▲기자= 명예훼손은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서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와 함께 이른바 '공연성'이나 '전파가능성'을 함께 보는데요, 일단 이 사건에서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는 인정이 됐습니다.

구약식처분 통지서를 직접 전송하진 않았지만, 해당 처분 통지서를 찍어서 프로필 사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죄지은 사람" 운운한 거는 상대에 대한 사회적 평판, 그러니까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나 목적이 인정된다는 것이 재판부(울산지법 형사8단독 정현수 판사)의 판단입니다.

▲앵커= 공연성이나 전파가능성은 어떻게 판단했나요.

▲기자= 명예훼손에서 공연성이나 전파가능성은 여러 사람에게 특정한 사실을 적시했는지, 여러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더 퍼져 나갈 가능성이나 개연성은 있는지를 따져 판단합니다.

이와 관련 우리 대법원은 "특정 개인이나 소수에게 개인적 또는 사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공연하다고 할 수 없고, 다만 특정의 개인 또는 소수라고 하더라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 또는 유포될 개연성이 있는 경우라면 공연하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82년 3월 23일 선고, 대법원 1989년 7월 11일 선고 등 참조).

명예훼손 피해자인 정수영씨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박현진씨가 보험설계사와 팀장 등에게 이를 보여줬다고 주장했습니다. 전파가 됐다는 취지로 주장을 한 겁니다.

▲앵커= 그래서 재판부 판결은 어떻게 됐나요.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보통신망 이용 명예훼손 혐의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박현진씨 한사람한테만 해당 메시지가 전달이 됐을 뿐 여러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었다거나, 실제 전파됐다고 볼 증거도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 외에는 전파 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오히려 박현진은 이 사건에 대해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사건 메시지를 모두 삭제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들어 이같이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 메시지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 또는 유포될 개연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실제 전파됐는지도 입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 메시지가 공연성이 있다는 점에 관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시입니다.

▲앵커= 듣다 보니까 궁금한데, 카톡 같은 SNS 프로필 사진에 어떤 사람의 범죄사실이 담긴 처분서를 찍어서 올리는 거 자체는 명예훼손이 아닌가요.

▲기자= 저도 그 부분이 궁금해서 주변 변호사들에 물어보았습니다. 일단 이번 사건 판결문을 보면, '공연성' 판단 관련해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고소·고발 사건 처분결과 통지서를 촬영한 파일을 업로드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이렇게 죄지은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서야 되겠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므로, 박현진에게 보낸 이 사건 메시지가 공연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문제의 프로필 사진 자체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는 애초 공소사실에 빠져 있다는 얘기인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판결문을 통해 공소사실을 보면 "이렇게 죄지은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서야 되겠냐"는 메시지가 명예훼손이라는 것이고요. 그 전제가 되는 범죄사실을 올린 SNS 프로필 사진은 그런 사진이 업로드돼 있는지 사실관계만 따지고, 이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사실을 재판부가 판단해서 유죄를 선고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서초동 한 변호사는 "판사는 결과론적으로 기소된 것만 판단한다"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공연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대해 법적인 판단이 내려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게 공소장 변경이 가능한지 모르겠는데, 항소심 재판부 판단이 궁금하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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