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처럼 기존 판결에 얽매이지 않는 새 양형기준 정립 필요"

[법률방송뉴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2천304만 가구 중 반려동물 양육 가정은 638만 가구로 반려견과 반려묘는 총 860만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난주 발표된 농림축산식품부 '2020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인데요.

적어도 네 집 걸러 한 집 이상은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인데, 눈에 띄는 건 국민 2명 중 1명은 현재 동물학대 처벌 수준이 미약하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그 실태와 대안에 대해 왕성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장면이 담긴 사진입니다. 

앞다리엔 화살처럼 보이는 길쭉하고 뾰족한 물체가 꽂혀있고 주변에는 다트도 널려 있습니다.  

사진 속 고양이를 보면 잔뜩 겁을 먹어 두려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이 사진은 '고양이 n번방'이라고 불리는 동물학대 영상 공유 오픈 채팅방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이 채팅방엔 고양이를 통덫에 넣어두고 발길질을 하거나 심지어 고양이를 산채로 태워 죽이는 등 끔직한 학대영상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습니다.

[모가람(39) / 반려견 보호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단순하게 물건이나 소유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생명으로..." 
 
해당 채팅방은 "그곳에는 악마들이 있었다"며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1월 올라오며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청원엔 27만명 넘는 네티즌들이 동참했고, 청와대는 관련 법 개정을 포함한 반려동물에 대한 권익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식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정기수 청와대 농해수비서관 / 2월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 행위를 한정적, 열거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처벌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다양한 학대행위를 포괄할 수 있도록 예시적, 포괄적 방식으로 개선하고 소유자 등의 사육관리 의무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동물보호법과 하위법령을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일단 현행 동물학대법은 제8조에서 동물살해와 학대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동물살해의 경우 징역 3년 이하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학대행위의 경우 징역 2년 이하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대 징역 3년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은 미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최근 10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3천345명 중 기소된 인원은 304명에 불과합니다.

동물학대로 수사기관 조사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기소되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마저도 실형을 받은 사례는 단 10명에 불과합니다. 

실제 지난 24일 개 목줄을 잡고 반려견을 공중에서 빙빙 돌리며 학대한 20대 여성 두 명에게 선고된 형량은 벌금 100만원.

이 정도 형량으로 동물학대 처벌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겠냐는 성토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이해인(29) / 반려견 보호자] 
"(처벌이) 강화가 되어야 일단 표면적으로 봤을 때 처벌이 강화가 되어야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겁을 먹고 감소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는데 일단 시범적으로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그리고 일단 학대를 당한 반려동물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동물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박승철 반려견 지도사 / 달려라 코코]
"아이(반려동물)는 사람이 괴물 같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근처에 다가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겁에 질려 대소변을 보거나 괴로워하며 울기도 하고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성을 보이는..." 

이 때문에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양형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기엔 일종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양형기준이라는 게 기존에 축적된 판결 형량을 토대로 세워지다 보니 처벌 강화가 아닌 기존 솜방망이 처벌을 인정하는 양형기준이 정립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승재현 연구위원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양형기준을 만든다 할지라도 가장 큰 문제는 양형기준이라는 게 종래에 있는 판사들이 선고한 형량을 가지고 양형기준을 만들다 보니까 그 양형기준이 만들어진다 할지라도 현재보다 높아질 가능성은 제로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이에 '디지털 성범죄'를 예로 들며 동물학대 처벌 관련 기존 판결에 얽매이지 않고 제로 베이스에서 양형기준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승재현 연구위원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결국 디지털 성범죄와 같이 기존에 판례가 쌓이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고, 그 인식 변화를 통해서 방금 말씀드린 대로 동물의 고통과 동물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근본적인 생각의 전환이..." 
 
전문가들은 나아가 처벌 강화와 함께 성범죄자의 경우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이나 수강명령을 병행하는 것처럼 동물학대 가해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가 범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홍완식 건국대 로스쿨 교수 / ‘반려견 법률상식’ 저자]  
"수강명령이라든가 사회봉사라든가 이런 거를 경미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게 '학대행위가 이렇게 안 좋다' 라고 하는 것을 교육을 통해서 사회봉사를 통해서 일종에 더 심한 학대를 예방하는..."

더불어 동물학대 행위자에 대해선 차제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승민 / ‘멍스필드’ 운영자] 
"한번 불상사가 일어났던 견주들은 자격박탈 같은 다시는 반려견을 키울 수 없게 할 수 있는 그런 법이 좀 생겼으면 좋겠고. 그에 따라서 그렇지 않은 견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또 해마다 늘고 있는 반려동물 유기와 학대를 줄이기 위해선 이른바 '공장'에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찍어내듯 생산하는 현재의 반려동물 유통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법률방송 왕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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