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욕망이나 의도 없어, 단순 불쾌감 유발"... 1심, 공연음란죄 무죄
"보통사람에 성적 수치심 유발"... 2심, 1심 무죄 판결 깨고 유죄 선고

▲유재광 앵커= 판결문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판결의 재구성', 오늘(28일)은 '공연음란죄'에서 '음란'의 의미와 관련한 얘기해 보겠습니다. 장한지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먼저 사건 내용부터 볼까요.

▲기자= 네, 53살 김모씨는 지난 2019년 8월 16일 오후 4시쯤 광주광역시 한 노상에서 불특정 다수가 있는 가운데 바지와 속옷을 내린 후 성기를 만져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김씨는 사흘 뒤인 2019년 8월 19일 오전 10시 30분쯤에도 공원에서 여성 2명 등 불특정 다수가 있는 가운데 옷을 모두 벗어 나체 상태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행위를 했습니다.

다만 자위와 같은 성행위와 관련된 행동은 하지 않았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고 만지는 정도의 행위를 했는데, 검찰은 김씨를 공연음란죄로 기소했습니다.

▲앵커= 이게 주변에 보면 이른바 '바바리맨'이라고 해서 이런 노출증 환자들이 있지 않나요. 처벌 관련한 법이 어떻게 돼 있나요.

▲기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3호 '과다노출' 조항에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범죄처벌법은 아시다시피 처벌이 약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될 뿐인데요.

그럼 다른 하나는 형법 적용입니다. 형법 제245조 '공연음란' 조항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앵커= 검찰은 처벌이 훨씬 센 형법상 공연음란죄로 기소했다는 건데, 재판 쟁점은 어떻게 되나요.

▲기자= 일단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성기를 노출했으니까 이른바 '공연성'은 인정이 된다고 봤습니다. 쟁점은 성기를 노출하고 만지는 정도의 행위를 '음란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는데요.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이나 부끄러운 느낌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면 경범죄처벌법엔 해당하지만, 공연음란죄로는 처벌할 수 없습니다.

형법을 적용해 처벌하려면 일반 보통인의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정도의 행위여야 공연음란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4년 3월 12일 선고, 대법원 2020년 1월 16일 선고).

▲앵커= 쉽게 말해 "저 사람 미친 거 아냐" 또는 "아휴 더러워" 정도 하고 지나쳤다면 공연음란죄로 처벌하긴 어렵다는 거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김씨는 여성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성기를 노출해 만지거나 성기 주변을 긁는 등 말씀하신 대로 더럽고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행위를 했지만, 1심 재판부는 공연음란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을 통해 어떤 성적인 의도를 표출하지 않은 점, 특정인을 대상으로 성적 만족을 추구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무죄로 판시했습니다.

한 마디로 김씨의 행위가 불쾌감을 줬을 순 있지만, 성적 욕망이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어서 공연음란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앵커= 이게 성적 수치심이나 음란 개념이 상대적인 것 아닌가요. 누구는 단순히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지만, 누구는 자기 몸은 아니지만 본인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기자= 공연음란죄의 '음란의 정의'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음란'이라는 개념은 사회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이고도 유동적인 것이고, 그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풍속, 윤리, 종교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추상적인 것"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음란성은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전체적인 내용을 관찰해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입니다(대법원 1995년 2월 10일 선고, 대법원 2012년 10월 25일 선고, 대법원 2020년 1월 16일 선고).

이에 문지연 기소검사와 박소영 공판검사는 "1심 판결이 공연음란죄의 '음란한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고요. 주위적 공소사실로 공연음란죄를, 예비적 죄명으로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공소장을 변경했습니다.

▲앵커= 항소심 판결은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무죄 판결을 깨고 공연음란죄를 인정해 유죄로 판결했습니다(광주고법 2020노127).

"제반 사실 및 사정들을 관련 법리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장소에서 성기를 공공연하게 노출한 행위 등은 일반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음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 판결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동종 전과가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이 사람이 전에도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는 말인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지난 2016년 6월에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에서 자위 행위를 해서 공연음란죄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자위행위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1차 노출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3일 뒤 또 비슷한 행위를 해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보통 사람 상식으론 잘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있는데, 사실 김씨는 지난 2000년 무렵부터 조현병과 정신분열증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폭행과 같은 이런저런 전과도 여러 건 있습니다. 이번에도 경찰에 체포되면서 "제가 힘들어서 하는 수 없이 그랬다"는 등 횡설수설했다고 하는데, 재판부는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고 치료감호도 함께 명령했습니다.

판결문을 보니까 김씨는 직업은 물론 일정한 주거도 없고, 돌봐 줄 수 있는 가족도 없는 어떻게 보면 좀 딱한 상황입니다.

▲앵커= 본인의 의지로 잘 제어가 안 되는 모양인데 치료감호시설에서 상태가 좀 호전됐으면 좋겠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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