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지난해 일률적 국적이탈 불허 국적법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데이비드와 가족, 낯선 땅에서 미나리와 같이 뿌리내리며 정착해 주기를"

[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등과 관련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김인석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김인석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1980년대 초의 미국, 그 중에서도 동양인이 가장 드물었을 아칸소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미나리’는 그 시절 아메리칸 드림으로 이주해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어느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영화관으로의 발길을 끊다시피 했다가도 간만에 영화관 나들이를 한 것은, 이 영화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래 전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노력 끝에 한인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시고 이제는 노년을 맞이하신 제 이모님이 생각나서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영화는 미국 서부에서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가 첫째 앤(노엘 케이트 조 분)과 둘째 데이비드(앨런 킴 분)를 데리고 아칸소의 농장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순자(윤여정 분)가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아칸소의 농장으로 합류하면서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줍니다.

극의 전개를 통해 제이콥과 모니카가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후 미국으로 이주해 적어도 둘째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출산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가 우리 국적법에 따른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국적법은 제2조를 통해 이른바 ‘속인주의’의 원칙을 규정하여 출생 당시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하였고, 미국은 이른바 ‘속지주의’의 원칙을 취하여 미국 영토에서 출생한 사람에게 곧바로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데이비드가 출생할 당시 제이콥과 모니카 중 한 명이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데이비드에게는 이중국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이중국적자가 공직 진출이나 군 입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우리 국적법 제14조 제1항 단서는 병역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병역법 제8조에 따라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자’는 편입된 때부터 3개월 이내에만 국적의 이탈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간 내에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군 복무를 마치거나 전시근로역 또는 병역면제처분을 받은 때부터 다시 국적이탈을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국적법 조항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2006. 11. 30.자 2005헌마739 결정과 2015. 11. 26.자 2013헌마805, 2014헌마788(병합) 결정을 통해 두 차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함을 판시한 바 있으나, 최근 헌법재판소 2020. 9. 24.자 2016헌마889 결정은 국적법 제12조 제2항 본문, 국적법 제14조 제1항 단서 중 제12조 제2항 본문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 법률조항’이라 합니다)이 청구인의 국적이탈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의 이유로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 기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 내에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못한 데 대하여 사회통념상 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정, 즉 정당한 사유가 존재”할 수 있다면서,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라는 입법목적을 훼손하지 않음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복수국적자에게 국적선택 기간이 경과하였다고 하여 일률적으로 국적이탈을 할 수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국적이탈을 허가하는 방안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에 해당하여 2020. 9. 30.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는 현재의 법률조항이 계속 적용되게 됩니다. 부디 우리 국회에서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라는 입법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한민국 국적의 보유 여부조차 몰랐다가 억울한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방지하는 묘안을 제시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 속 데이비드와 그 가족도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미나리와 같이 하루하루를 뿌리내리며 낯선 땅에서 잘 정착해 주었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