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착오 상태 빠진 사람 기망해 금전적 이득... 사기죄 성립"

▲유재광 앵커= 일상생활에서 부딪칠 수 있는 법률문제를 법제처 생활법령정보와 함께 알아보는 알쏭달쏭 솔로몬의 판결, 오늘은 사기죄 얘기해 보겠습니다. 왕 기자, 일단 어떤 상황인지 볼까요. 

▲왕성민 기자= '전귀남'씨는 뼈대 있는 전씨 집안의 종손으로 4대 독자입니다. 그런데 전씨는 부인 '나형주'씨와 사이에 딸만 넷을 낳아 살고 있었는데요. 종손으로써 가문의 대가 끊기는 건 아닌지 항상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씨 부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유명한 의사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됐고, 해당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해준 의사 유모씨는 "나한테 시술을 받은 산모들은 모두 아들을 낳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며 시술비와 약값 명목으로 1천만원을 요구했는데요. 전씨 부부는 1천만원을 유씨에게 지급하고 시술을 받았지만 결국 또 딸을 낳았습니다. 이에 전씨 부부는 유씨를 사기죄로 고소한 상황입니다. 

▲앵커= 양측 주장은 어떤가요. 

▲기자= 일단 전씨 부부는 "의사 유씨가 아들을 낳게 하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1천만원 씩이나 하는 거금을 지불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유명한 의사라는 사람이 아들을 낳아주게 하겠다고 해서 돈을 줬는데 딸을 낳았으니 이건 사기다" 이런 입장입니다. 

반면 의사 유씨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의술의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전씨 부부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해 본 것 아니냐" 결과적으로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최선을 다한 의사에게 사기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앵커= 양측 주장이 나름 근거가 있고 팽팽한 것처럼 보이는데 핵심 쟁점이 뭔가요. 

▲기자= 사기죄는 상대를 기망해 금전적 이득을 취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아들 출산을 명목으로 의사 유씨가 1천만원이라는 금전적 이득을 취한 건 사실이지만 과연 의사 유씨에게 상대를 속이려는 기망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입니다. 

▲앵커= 사기죄 기망을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기자= 관련해서 확립된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지난 2000년 1월 29일 선고된 대법원 99도2884 판결인데요. 대법원은 먼저 "사기죄 요건으로서의 기망은 널리 재산상의 거래관계에 있어 서로 지켜야 할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든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기망행위를 정의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이러한 소극적 행위로서의 '부작위에 의한 기망'은 법률상 고지의무 있는 자가 일정한 사실에 관하여 상대방이 착오에 빠져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고지하지 아니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를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적극적으로 상대를 속이는 것만 기망이 아니고, 소극적으로 관련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상대가 착오상태에 빠진 걸 이용하는 것도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반거래의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칙에 비추어 그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되는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시입니다. 

▲앵커= 그럼 이 경우는 사기죄가 성립하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대법원은 특정 시술을 받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오에 빠져있는 피해자들에게 그 시술의 효과와 원리에 관하여 사실대로 고지하지 아니한 채, 정말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시술인 것처럼 가장해서 일련의 시술과 처방을 행한 의사에 대해서는 상습 사기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습니다.   

관련해서 법제처는 원칙적으로 의술의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을 수 있으므로 의사가 그 점에 대해 설명의무를 다하고 의사로서의 최선을 다한 경우에는, 원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와 같이 유명한 의사가 특별한 의학기술이 있는 것처럼 꾸며 자기에게 시술을 받기만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장담함으로써 전씨 부부가 착오를 일으키고 돈을 지급한 경우에는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제처의 설명입니다.

결국 의사가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아 착오에 빠진 사람을 상대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면 이는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 결론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세상엔 참 다른 사람의 궁박한 처지를 악용하는 다양한 사기꾼들이 많은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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