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향석 법제처 법제심의관 "공무원들 관행적 행정에 제동, 국민 권익 강화"

▲유재광 앵커= 행정기본법이 제정돼 시행됐다는 소식 지난주 보도해드렸는데요. 법제처 채향석 법제심의관 모시고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행정기본법이 어떤 법인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채향석 법제심의관= 정부에서 학계·법조계 등 전문가들과 함께 오랜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행정기본법이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됐고 3월 23일 공포·시행하게 됐습니다. 행정기본법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행정을 할 때 기준이 되는 공통 매뉴얼이자 행정법령들을 모두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플랫폼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법령이 5천개 정도 되는데요. 그중에서 4천600개 정도가 행정법령입니다. 아직까지 여기에 기본이 되는 법이 없었거든요. 가지와 잎은 무성한데 그것을 관통해주는 줄기가 없었던 셈이죠. 그래서 이번에 민법이나 형법, 상법처럼 행정법 분야에도 기본 골격이 되는 기본법을 이번에 만들게 된 것입니다.

▲앵커= 기본법을 만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그동안 학설과 판례로 의존해오던 행정이 법 규범화됐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직무규범이 될 것이고요. 국민 입장에서는 하나의 권리규범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법령에 산재해있는 유사하고 공통적인 제도들이 통일적으로 규정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행정법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고 간결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법제사적인 측면에서도 보면 우리나라 행정법령이 그동안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법령을 수용해왔는데요. 이번에 이런 행정의 실체가 되는 기본법이 만들어진 나라가 별로 없거든요. 선진 외국 법제에 앞서는 입법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이게 만들어지기 전과 후, 무엇이 달라지는 건가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이게 혹자들은 행정기본법이 없어도 그동안 행정이 문제없이 잘 운영됐지 않느냐, 왜 필요하냐, 그런 말씀을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가 예를 들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형사관계법에 보면 어떤 범죄행위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처벌할 수 없게 하는 공소시효 제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개별법령에도 이와 유사한 취지의 규정들이 있기는 한데요. 대부분의 행정법령들은 인허가를 취소한다거나 하는 제재처분을 할 때 이러한 시효를 정해놓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우연한 기회로 법을 위반했는데 한동안 잊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허가를 취소한다거나 영업장을 폐쇄한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학설이나 판례에 보면 이런 경우는 '신뢰보호 원칙'이라는 법 원칙이 있어서 원래 이러한 제재처분이 일정 기간 지나면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일선 공무원들은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법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법 규범으로 인식을 안 하고 소극적인 행동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행정기본법에 이러한 원칙들을 규정화해서 여기에 입안되는 행위들을 못하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그동안의 불합리한 관행들을 없애고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앵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이게 법이 없으니까 이것을 저 사람에게 불이익이 갈 것 같은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왔다는 그런 취지인 것 같은데 그런 사례들이 많이 있었나보네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문제되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한두 가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먼저 신고효력 규정을 명확히 담았는데요.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거나 경제활동을 할 때 혼인신고나 전입신고, 영업신고 같은 다양한 신고들을 하고 있는데요.

어떤 경우는 신고가 신고서만 접수하면 그 다음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신고서를 내도 행정관청에서 그것을 심사한 이후에 신고증을 주고 수리가 됐으니까 해도 된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신고제도인데 그동안 통일적 기준이 없다보니까 각각 운영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행정기본법에다가 수리가 필요하다고 규정돼 있는 경우에는 수리를 해야만 행위를 할 수 있고 그 밖의 경우에는 신고서만 제출하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효력을 담았습니다. 또 하나 사례를 들어보면, 우리가 인허가 할 때 부과하는 조건들에 대해서 제한하는 규정을 뒀습니다.

개발사업을 할 때 허가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가끔 받아보면 인허가의 조건으로 실질적인 관련도 없는데 '도로를 기부채납해라' 이렇게 조건을 부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허가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용도 많이 발생하고 또 이게 분쟁으로 비화되면 소송으로 갈 수 있고 그래서 절차가 지연되는 사례들이 있었는데요.

앞으로는 해당 인허가를 할 때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은 붙이지 못하도록 해서 그것을 부당결부금지 원칙과 부관이라는 제목으로 조건을 부과할 때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것을 부과했을 경우 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명시했습니다.

▲앵커= 그런 식으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기대효과, 어떤 게 더 있을까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몇 가지 기대효과를 말씀드리자면 먼저 앞에 말씀드린 대로 '신뢰보호 원칙'이나 '부당결부금지 원칙' 같은 그런 행정법 주요 원칙들이 법률에 명문화됨에 따라서 공무원들은 그동안의 관행에 따른 행정이었는데 이제는 법에 따른 행정이 가능해지고요. 법치행정이 강화될 것 같고요. 또 국민의 법적인 권리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가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유사한 제도들이 여러 법률에 있는 것들을 여기에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하다 보니까 개별법령을 일일이 개정할 필요 없이 기본법 규정 하나만 개정을 하면 규제개혁이 달성될 수 있는 그런 효과가 있을 것 같고요. 또 이번에 다양한 국민들의 권리구제 수단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예를 한두 가지 들자면 개별법에 규정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근거가 없더라도 현장에서 행정처분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경우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일반적 근거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없던 제도를 도입했는데 '재심사제도'라고 도입했습니다. 이것이 생소하실 텐데요. 행정처분을 받았을 때 일정기간이 지나버리면 소송으로도 다툴 수 없게 돼 있거든요.

그런 경우일지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가 발견되면 처음에 행정처분을 하는 행정청에 이것을 재처분을 해달라는 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이번에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미래 행정수요에 대비한 규정을 넣었는데요. 요즘 한참 인기가 많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서 인공지능과 같은 완전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행정이 가능하도록 그런 규정을 뒀습니다.

그래서 미래 과학기술 발전에 행정이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그런 근거규정을 이번에 넣었습니다.

▲앵커= 말씀드려보니까 꼭 필요한 법령인 것 같은데 이게 왜 지금까지 안 만들어 졌는지가 궁금하고, 기대효과를 좀 추가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그밖에도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많이 도입됐습니다만 적극행정 차원에서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자면 '인허가의제 협의 간주 제도'라는 것을 도입했습니다.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우리가 상가건물을 짓는다거나 어떤 개발 행위를 할 때 인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여러 가지 인허가를 받아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건물 하나 올릴 때도 건축허가를 비롯해서 산지전형, 농지전형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각 개별 허가부서들을 쫓아다니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요. 이런 시간과 비용이 좀 많이 불편하니까 그 주된 인허가를 하는 관청에서 그것을 한꺼번에 대신 협의해서 받아주는 그런 제도가 있는데 그런 것을 '인허가 의제제도'라고 합니다.

인허가 의제제도가 우리나라에 116개 법률에 도입이 돼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협의를 할 때 기간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서 도대체 언제까지 답을 기다려야 되는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행정기본법에 개별법의 별도의 규정이 없더라도 20일간의 협의기간을 주고 20일이 지나도 아무런 회신이 없는 경우에 협의를 해준 것으로 간주해서 그냥 인허가를 내주도록 하는 행정절차를 굉장히 간소화하고 적극행정을 할 수 있는 그런 근거를 도입했습니다.

▲앵커= 행정 관련 법안이 방대해서 법안 마련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기존에 학설과 판례를 주로 반영하다보니까 사실 학설과 판례가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 않습니까. 학자와 법조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한데 모으는데 상당히 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산을 하나 넘으면 또 하나의 큰 산이 나타나고 또 하나의 큰 산이 나타나고 그런 기분으로 이렇게 업무를 추진해왔는데요. 가장 먼저 부딪힌 쟁점이 뭐였냐면 법률명칭을 정하는 문제였습니다.

지금 행정기본법으로 지어놨는데 그 외에도 행정작용법, 행정의 기준과 원칙에 관한 법, 일반행정법 그냥 행정법 이런 식으로 10가지 이상의 법률명칭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마 행정기본법에 대해서 동의를 안 하시는 학자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이 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는 공동의 어떤 목표가 있어서 사실 원로학자부터 소장학자의 이르기까지 학자들이란 게 자기들의 이론을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동안 자기들이 쌓아온 이론과 신념 이런 것도 일부 양보하면서까지 이 법이 통과될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고요.

또 법안 내용도 중요하지만 입법절차 면에서도 중요한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들이 입법을 하는 초안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이해관계자인 법조계나 학계의 전문가들을 같이 작업하기 위해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는데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그런 학자와 판사님들을 자문위원으로 넣으려고 발품을 많이 팔았던 기억이 나고요.

또 지방에 있는 학자들이나 시민단체, 지방 일선 공무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 권역별 공청회를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닌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들을 고려해서 공청회 개최없이 신속하게 심사를 하고 입법을 통과시켜줬습니다.

행정기관에서 입법을 할 때 민관이 협력해서 하는 새로운 입법 모델을 이번에 제시해준 것으로 자부합니다. 

▲앵커= 새로운 입법 모델을 만드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법률방송 시청자와 국민들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채향석 법제심의관= 이제 앞으로 이 법이 공포시행이 됐는데요. 이 법이 앞으로 잘 시행될 수 있도록 일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해설서를 발간하고 공무원들의 교육 등을 통해서 행정 현장에 안착하고 원활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고요. 또 과징금이나 이의신청과 같이 구체적인 세부적인 절차와 방법을 정하도록 위임돼 있는 것들은 9월까지 대통령령을 제정해서 공포할 겁니다.

그리고 인허가 의제제도나 이행강제금 제도같이 이 법에도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한 것들은 개별법들을 다 정비해야 되거든요. 이런 것들은 2년여에 걸쳐서 정비를 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러한 작업과 병행해서 앞으로 이번에 기본법에 들어가 있는 것들은 그동안 학설과 판례에 정립된 내용들을 우선 반영한 겁니다. 이것 말고도 법치행정과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필수적인 법원칙과 행정제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학계, 법조계 그리고 관계부처와 연구해서 발굴하고 보완해나갈 계획입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도 법치행정과 국민 권익보호에 법제처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시길 바라고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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