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1987년 부랑자들 선도 명목 불법 수용해 강제노역·학대... 513명 사망
대법원 "사건 핵심은 인간 존엄성 문제, 진실규명으로 피해자 아픔 치유되길"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박준영(왼쪽에서 두번째) 변호사 등이 지난해 10월 15일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 첫번째 공판에 출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박준영(왼쪽에서 두번째) 변호사 등이 지난해 10월 15일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 첫번째 공판에 출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수용된 부랑자들에 대한 감금과 강제노역, 암매장 등을 자행한 고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됐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돼 무죄가 확정된 박씨에 대한 비상상고심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지난 1989년 박씨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내린 후 32년 만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 결정 사유를 밝혔다.

비상상고는 확정 판결을 대상으로 심리나 재판에 법 위반이 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법 위반만 바로잡기 위한 것이어서 박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파기됐어도 죄를 물을 수는 없지만, 피해자들의 손해배상과 명예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대법원의 기각 결정 취지는 박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근거가 비상상고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제20조여서 무죄 판결이 법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형제복지원 사건이 인권유린 사건인 만큼 국가가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령 위반의 의미와 범위에 관해서는 다른 비상상고 사건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원칙을 벗어나면 확정 판결의 법적 안정성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진실규명 작업으로 피해자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형제복지원은 지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수용시설처럼 운용되면서 부랑자들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형제복지원의 자체 기록에 따르면 12년 동안 513명이 사망했고 시신 일부는 암매장됐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신도 있다.

검찰은 1987년 박씨를 업무상 횡령 및 특수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의 부실·축소 수사 의혹이 제기됐고,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한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부랑자 수용은 불법 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다. 검찰은 진상조사를 벌여 불법 수용과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비상상고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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