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업소 운영자, 해충 피해 방지 의무... "미국에선 54만6천 달러 배상 판결도"

▲유재광 앵커= 묵고 있던 호텔에서 ‘빈대’에 물려 전신 피부염이 생겼다. 황당하다면 황당한 일인데, 호텔 측에 배상책임이 있을까요. ‘법률구조공단 사용설명서’ 신새아 기자와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호텔에서 빈대에 물렸다. 이거 뭐 어떤 일이 벌어진 건가요.

▲기자= 올해 44살인 이모씨 얘기입니다. 이씨는 지난 2017년 10월 결혼식 웨딩사진 촬영을 앞두고 친언니와 함께 2박 3일간 전주시 소재 한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매들은 호텔에 투숙한 지 이틀째 되던 날 갑자기 피부가 가렵고 빨갛게 부어오르는 등 피부염 증상을 보였는데요.

알고 보니 침구류에 서식하던 해충에 수십 군데가 물려 처음엔 가려움 증상을 보이다 부어오름으로 번지는 소양증 및 전신 피부염 증상이 나타나게 된 겁니다.

▲앵커= 그 해충이 빈대인지는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기자= 앞서 이씨의 언니가 같은 해 1월, 같은 호텔 동일한 방에 묵은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해충에 물려 2개월 이상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이씨 언니가 호텔에 강하게 항의를 했고, 호텔 측이 자체 조사를 해보니 실제로 다수의 빈대와 빈대알이 발견됐던 겁니다.

그게 9개월 전이니까 이씨 자매는 당연히 빈대가 박멸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고 해당 호텔에 투숙했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빈대에 온몸을 뜯기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일을 다시 당했습니다.

▲앵커= 말 그대로 어이없고 황당하네요.

▲기자= 네. 그리고 이씨 자매 입장에선 호텔 측으로부터 황당한 일을 또 당하게 됐는데요. 결혼을 앞둔 동생 이씨는 외모가 중요한 프리랜서 방송인이라고 합니다. 이에 이씨 자매는 "방송인에다, 결혼식 웨딩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피부가 부어오르는 소양증에 전신 피부염이 뭐냐.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강하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호텔 측에서는 오히려 “200만원 이상은 줄 수 없다. 그 이상의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며 어떻게 보면 ‘나몰라라'식의 태도와 함께 이씨 자매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까지 걸었는데요. 이에 피해를 보고도 오히려 소송을 당하게 된 이씨 자매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공단에서는 호텔 측의 채무부존재확인 소송도 이행하는 한편 손해배상 청구의 반소, 즉 맞소송도 제기했습니다.

▲앵커= 이게 사실관계는 다툴 게 없는데, 법리적으로 양측은 어떤 주장과 논리를 펼친 건가요.

▲기자= 네. 재판에선 이씨 자매가 빈대에 물린 게 호텔 측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호텔 측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 즉 ‘불가피한 사정’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습니다. 이에 호텔 측은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100만원을 들여 전문방역업체를 통해 방역과 청소를 했다”면서 “그런데도 객실 내 해충이 박멸되지 않은 것은 ‘불가피한 사정’에 해당한다. 책임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자는 안전하고 편안한 시설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침구류에 적절한 세탁 및 소독 조치를 게을리한 채무불이행 책임이 있다”고 맞섰습니다. 공단 측은 특히 이씨 자매가 사건 이후 잠을 잘 때마다 불안감에 시달리는 점, 가족들에게 빈대를 옮길까 노심초사하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 등도 함께 부각했습니다.

▲앵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데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렸나요.

▲기자= 네, 재판부는 두 차례의 조정을 거쳐 호텔 업주 박씨가 이씨 자매에게 각각 300만원씩, 총 600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고요. 양측이 이를 수용하면서 사건은 종결됐습니다.

이씨 측을 대리한 공단 춘천지부 박성태 변호사는 “숙박업소 운영자는 고객의 안전을 위해 침구를 철저히 세탁하고 소독해 해충 피해를 방지할 의무가 있다”며 “향후 숙박업체에서 숙박을 하는 일반 국민이 이와 같은 해충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고려될 만한 특이 사례”라고 의의를 밝혔습니다.

▲앵커= 앞서 박성태 변호사가 ‘특이 사례’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태까지 비슷한 판례가 없었나 보네요.

▲기자= 국내 사례는 이번 사건 외에 아직 확인된 것이 없고, 외국에는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랜초쿠카몽가에 위치한 ‘힐튼 가든’에서 빈대에 물린 3인 가족이 호텔을 상대로 치료비와 정신적 스트레스 비용을 지불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들 가족은 “침대에 누운 지 몇 시간 만에 빈대에 물려 피부가 부풀어 올라 호텔 측에 방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지만 모든 방이 예약돼 있어 바꿀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호텔을 상대로 소송을 낸 건데요. 이에 샌버너디노 카운티 법원은 이 가족들에게 54만6천 달러, 우리 돈으로 6억원 정도 되는 금액을 지불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빈대와 관련된 소송 중 가장 큰 액수라고 전해집니다.

▲앵커= 6억원이면 빈대에 잠깐 물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튼 빈대 물리면 숙박업소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하니 나름 쓸모 있는 정보인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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