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시켜놓고는 오토바이 출입금지 "화물 엘리베이터 타라"... 라이더유니온 "인권침해" 반발

[법률방송뉴스] '갑질 아파트'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파트가 갑질을 한다, 언뜻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하는데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 사이엔 일상어로 통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갑질 아파트, 어떤 내용인지 장한지 기자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 출입구 앞입니다.

영하의 칼바람에 옷을 두껍게 껴입은 음식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가 입구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일순 얼음처럼 멈춰섭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하더니 일단 인도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경비실에 가서 뭔가를 물어보고 돌아옵니다.

그러더니 오토바이 배달통에서 음식을 꺼내 양손 가득 들고 걸어서 배달을 갑니다.

이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가 입구에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오토바이 출입금지' 팻말.

단지 안에 배달 오토바이 출입을 차단한 겁니다.

[A 배달 운전자]
"(지금 들어가실 때 오토바이 못 들어가시는 거죠?) 네. (이 근처에 못 들어가게 하는 데가 많나요?) 여기 못 들어가는 데 많아요. 다 걸어가야 해요. (되게 불편하지 않으세요?) 당연히 불편하죠. 여기 세워두면 나는 저 끝까지 걸어가야 해요."

기껏 배달시켜 불러놓고 못 들어가게 하는 건 뭔지, 야속하고 화도 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A 배달 운전자]
"못 들어가게 해버리니까. '아이 가지 마!' 보통 그래요. '좀 들어갈게요' 그러면 '걸어가라'고. 무조건 경비가 다 막아버리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싸울 거예요? 싸우면 우리가 손해인데..."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시간이 곧 돈인 배달 운전자들 입장에선 아쉽고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A 배달 운전자]
"이거 돈 3천원 벌려고 걸어가면 손해죠. 시간이 한참 걸려버리니까. 강남은 되게 심해요. 여기서 가다가 올라가는 시간도 있고 이런 거면 안 되는 거죠, 돈은 안 되고. 그럼 안 가고 싶어요. 솔직히..."

강남에 있는 또 다른 아파트, 출입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오토바이 3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역시나 배달 오토바이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B 배달 운전자]
"(오토바이 못 들어가서 지금 이러고 다니시는 거예요?) 네. (이 동네는 다 이런가요?) 네. 왜요? (제일 불편하신 게 어떤 거예요?) 시간 오래 걸리고 그런 거죠, 뭐. 시간 오래 걸리고 다리 아프고 저 앞에까지 걸어가고..."

일찌감치 다 체념하긴 했지만, 꼭 이렇게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단지를 걸어서 배달해야 하는 건지, 생각하면 문득문득 화가 솟구칩니다.

[B 배달 운전자]
"역삼동 전체가 다 오토바이 못 들어가게 해요. 갑질이죠, 갑질. 입주민들 갑질. 위험하다고 못 들어가게 하는데, 주민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 거죠. 아무튼 역삼동은 전부 다 갑질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실제 '라이더유니온'이 지난 한 달간 배달 운전자들에게서 제보를 받아보니 서울과 인천 광주, 부산 등 주요 대도시 100곳 넘는 아파트단지에서 오토바이 출입금지 등 라이더 입장에선 '갑질'을 당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강남과 서초, 양천구 목동, 부산 해운대, 인천 송도 등 이른바 비싼 동네일수록, 그리고 새로 지은 아파트일수록 이런 현상은 심했습니다.

[구교현 /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
"아파트의 관리방식이 폐쇄적으로 변한다고 할까요. 외부인들의 진입을 경계하거나 강하게 관리하거나 이런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한편에서는.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배달 노동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 인식, 이런 것들의 반영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배달 운전자들에 대한 이런 편견의 발현이나 일종의 차별적 대우는 비단 '오토바이 출입금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무슨 '잠재적 범죄자'라도 되는 양 인적사항을 다 적어줘야 아파트단지 안에 들어가게 해주는 경우도 있고,

[C 배달 운전자-경비원]
"(배달 오신 거예요?) 네. (이거 작성해주시고요. 저쪽으로 돌아가서 문 하나 열고 들어가시면 엘리베이터 있거든요.) 204동 ***호고요. (성함, 연락처요.) 제 개인정보를 써야 하나요? (네.)"

굳이 주민들이 타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짐짝 취급을 하며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C 배달 운전자-경비원]
"저쪽 엘리베이터 타면 되나요? (문 하나 열고 들어가시면 화물용 엘리베이터 있거든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라고요? (네.)"

화물용 엘리베이터 안에는 배달 운전자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기도 하고, 비가 와서 미끄러운데도 굳이 지하주차장을 통해 가라고 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D 배달 운전자]
"바닥이 굉장히 미끄럽기 때문에 여기는 굉장히 서행해야 합니다. 그냥 가도 미끄러운데 비가 오면 실제로 굉장히 위험한 그런 아파트입니다. 실제로 사고가 많이 나는 아파트이기도 하고요."

같은 배달인데 택배 운전자는 들어가는데, 유독 바퀴 2개 오토바이 탄다고  배달 운전자만 못 들어가게 막으면 한숨이 절로 나기도 합니다.

[E 배달 운전자]
"택배 차들은 다 진입이 됩니다. 배달 오토바이만 진입이 안 돼요. 배달 오토바이만... 하..."

그밖에 라이더유니온에 제보된 내용을 보면, 헬멧 벗은 맨 얼굴이어야 출입 가능, 엘리베이터 탑승키를 받기 위한 개인물품 보관 등 비하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달이 무슨 죄도 아니고, 아무리 일이라 해도 배달시켜 놓고 이런 취급을 당하면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배달 운전자들의 하소연입니다.

[구교현 /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
"여러 아파트들에서 배달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인권침해 소지에 해당한다, 저희는 모멸감도 느끼고 있고 안전에 위협도 받고 있는 것이고..."

이에 라이더유니온은 어제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런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현실에 대한 개선 및 정책 권고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배달 운전자들은 화물이 아니라는 게 라이더유니온의 항변입니다.

[박정훈 /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우리는 화물이 아니고 손님은 귀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일일이 입주자 대표들과 싸울 수가 없잖아요. 저희가 진정을 하게 되고 국가인권위 판단이 있으면 저희가 어쨌든 이것은 국가인권위에서 인정한 차별행위라고 대응을 할 수가 있으니까..."

라이더유니온은 이와 함께 국토교통부 및 지자체에도 관련 관리·감독 및 정책권고를 요청하는 한편, 배달 앱 업체들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줄 것도 촉구했습니다.

[박정훈 /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플랫폼이나 배달 주는 업체에서 그 아파트들 주민들에게도 이것을 공지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고요. 공지하거나 배달에 대한 대형업체도 마찬가지고 대책을 세워주시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우리 라이더들이 일일이 대응하기는 여전히 힘들거든요."

공을 넘겨받은 인권위의 신속하고도 전향적인 결정과 후속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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