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여성비하 논란 일자 "시민독재" 비난까지... "공론의 장 만들어야"

[법률방송뉴스] '기안84'라는 유명 웹툰 작가가 그린 '복학왕'이라는 제목의 네이버 인기 웹툰이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용인되는 걸까요. 오늘 'LAW 투데이'는 법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항상 논쟁의 대상인 표현의 자유 문제 얘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기안84 '복학왕' 여성비하 논란이 어떤 내용인지, 웹툰 규제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돼있는지 보시겠습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TV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고 있는 만화가 기안84가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는 인기 웹툰 '복학왕'입니다.

지난달 4일 연재한 '복학왕' 304회에서 기안84는 여주인공 봉지은이 40대 남성에 자신의 성을 제공하는 대가로 입사한다는 설정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을 그려 여성비하와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댓글만 3만8천 개 넘게 달렸는데 "조개 깬다고 합격은 어느 나라 헛소리지",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냐, 노력이고 나발이고 그냥 되는대로 살면 된다는 건가"는 식의 비판과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반면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너무나 잘 끄집어냈다"며 기안84를 옹호하는 글들도 있고, "페미들 신났네", "페미들 역겹다"는 식으로 웹툰에 대한 비판 자체를 불편해하는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남자가 스폰해서 성공하는 건 안 불편하고 여자가 조개 깨서 입사하는 건 그렇게 불편하냐"는 반응도 있고, "이게 현실 반영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회사를 다니길래" 같은 글들도 눈에 띕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기안84는 "부적절한 묘사로 심려를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하다"며 문제의 표현을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기안84는 그러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그려보게 됐다"고 설명하며 "이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불쾌감을 드렸다"고 거듭 사과했습니다.

기안84가 사과하고 문제의 표현을 수정했지만, 영화 '신과 함께' 원작자인 또 다른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이 "옛날에는 국가가 검열을 했는데 지금은 독자가 한다"며 '시민 독재'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지난 18일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면서 웹툰 검열에 대해 "웹툰 검열이 진짜 심해졌다. 지금은 시민과 독자가 한다. 시민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이 부분은 굉장히 문제가 크다. 큰일 났다"고 말한 겁니다.

주호민은 또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보통 '내 자신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니까'라는 생각 때문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게 될 것이고, (작가가) 만약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다고 한다. 그냥 죽이는 것이다. 재밌으니까 더 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주호민은 1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단어 선택이 신중하지 못했다"며 '시민 독재' 발언을 사과했습니다.

기안84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작가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일반론적인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주호민 / 웹툰 작가]
"지금 대중들에 의한 검열 그런 것들이 굉장히 심해졌다, 그래서 창작자들의 의욕이 꺾이는 것 같다, 그런 견지에서 말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단어 선택이 신중하지 못했습니다. '시민 독재'라든지 이런 것들은 제가 조절을 하지 못하고 나온 실언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사과를 드립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홈페이지엔 '복학왕' 연재 중지와 기안84의 퇴출을 요구하는 청원과 퇴출 반대 청원이 나란히 올라와 있습니다.

폐지를 요구하는 쪽에선 이번 사건 이전부터 웹툰 내용에 이런저런 여러 논란이 있어 왔다며 이참에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폐지 반대쪽에선 "강간, 살인, 사기 등 안 좋은 내용이 있으면 다 퇴출돼야 하냐"고 반문하며 페미니즘 여성단체들을 겨냥해 "특정단체 입장에 맞는 작품만 보겠다는 거냐"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퇴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해 나가는 애니메이션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등급 부여를 하고 있고, 방송 애니메이션은 방송통신심위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웹툰이 아닌 만화책 같은 경우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간행물로 심의를 하는데 웹툰은 어떻게 보면 공적기관의 심의와 규제에서 빠져있는 모양새입니다.

웹툰의 경우는 공적기관이 아닌 각 인터넷 플랫폼과 한국만화가협회 웹툰 자율규제위원회 자체 규율에 맡겨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웹툰 작가들의 검열 반대 운동, 이른바 '노컷 운동' 조치의 일환으로 웹툰은 협회의 자율규제에 맡기기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만화가협회가 합의한 겁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
"2012년쯤에 '노컷'이라고 해서 심의 관련돼서 '이것은 검열이다'라는 식의 '노컷 캠페인'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방심위) 위원장이었던 박만 위원장과 만화가협회 측이 이것은 자율규제를 하겠다고 MOU를 맺어서 해당 내용은 만화가협회에서 자율적으로 자율규제를 하는 쪽으로 진행이 된 것이거든요."

기안84 '복학왕' 논란으로 다시 불거진 웹툰의 선정성과 폭력성 등 논란에 대해 네이버 웹툰 측은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더욱 섬세하게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네이버 웹툰 측은 그러면서 "강화된 가이드라인과 모니터링 기준 적용, 교육을 위한 준비를 현재 하고 있다"며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측면을 감안하여 준비 중이며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사건 관련 미디어 전문가는 "예전엔 국가권력이나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면 지금은 주호민 작가가 '시민 독재'라는 과도한 표현으로 논란이 되긴 했지만, 여론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진단합니다.

[김희경 /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학술교수]
"표현의 자유 문제라는 게 예전에 1990년대 마광수 교수 사건, 이게 법정에서 '즐거운 사라'가 선정성이 있다, 사회풍속을 해친다... 이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인데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거든요. 그때는 법원에서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것을 법적으로 심판했다면 이것은 시민들이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이 (심판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웹툰 작가들의 달라진 위상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일정한 비판과 규율은 필요한 측면이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을 기안84 개인이나 '복학왕' 하나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웹툰과 표현의 자유의 한계와 제약 등에 대한 공론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김희경 / 성균관대 사화과학부 학술교수]
"이런 문제들은 실질적으로 시민들이나 법정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분명히 쟁점화하고 논쟁이 될 수 있는 거리고, 논쟁의 차원에서 건강하게 서로 문제가 되는 사안을 얘기하는 것들, 쟁점화하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지..."

여러 논란과 지적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만화가협회 웹툰 자율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정례적으로 협회와 모임을 갖고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
"(만화가협회) 자율규제위원회 측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인지를 하고 있으니까 업체들, 회원사들과도 지속적으로 협의를 해서 내용 수정을 하겠다고 한 것이니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자율규제위원회 측이랑 같이 회의를 정례적으로 진행하고 내용들을 조금 더 사업자 측에 잘 전달돼서 그 내용 수정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게끔..."

이와 관련, 만화계성폭력대책위 등 시민단체는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를 조롱할 권리가 아니"라며 "작가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이고 구체적인 윤리 및 성인지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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