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비한 헌법 개정, 개헌작업의 한가운데 두어야
통일한국에서 세종시를 수도로 하는 것이 타당한가?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재작년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화기애애한 만남의 광경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힌 사람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그 후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남한은 미국 주도의 북한 봉쇄의 벽을 뚫고 북한과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나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 평화공존체제의 틀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으니, 이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성과인지 모른다.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남북 평화공존체제의 유지에서 나아가 통일로 가는 길의 포장을 국민들 앞에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부하된 시대정신인 까닭이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이다. 그러나 통일을 단순히 민족의 지상과제가 해결되는 일로 환호한다고 해서 그것이 원만하게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통일은 수천만 인격체의 운명이 갈라질 수 있는 가혹한 현실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가장 참고로 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통일이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19일 허물어졌다. 한 편의 코미디처럼 우연이 작용했으나, 당시의 국제적, 역사적 상황이 그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동·서독 양국 정부 간에 통일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다가 1990년 5월 18일 통화·경제·사회통합의 창설에 관한 국가조약(Vertrag über die Schaffung einer Währungs-Wirtscafts und Sozial Union)을 체결하였고, 그해 8월 31일 서독과 동독 양국 간의 통일조약(Einigungvertrag)이 체결되었다. 이 통일조약의 체결 전에 동독 인민들은 서독에 동독이 흡수통일되는 방식을 원하여 그에 따라 통일조약이 체결되었다.

통일조약에서 기존에 있던 서독의 기본법(Grundgesetz)에 약간의 개정을 전제하여 통일독일의 헌법으로 하는 외 통일 후의 법체계 전반에 걸쳐 양국 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담았다. 통일조약의 체결과 동독의 서독연방에의 가입 및 그해 12월 2일 통일선거의 실시로 독일은 완전히 통일되었다.

과거 우리에게도 독일 통일의 경우처럼 숙고의 기간이 주어지는 행운이 찾아올 것인가에 관하여 그렇지 않다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돌발적 통일의 과정에서 북한 지역에 발생하는 급속하고 엄청난 권력공백의 위험이 필연적으로 닥치며 통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였다.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의 진전은 이런 암울한 통일의 시계(視界)를 어느 정도 바꾸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통일을 대비한 헌법을 만드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국회에서 논의된 개헌안이나 과거 청와대가 정부개헌안으로 발표한 것의 내용에서 통일에 대비하는 조항을 찾을 수 없다.

머지않은 장래에 통일이 된다고 할 때 북한 주민들이 휴전선을 넘어 대거 남쪽으로 오려고 할 경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골치아픈 문제에 대한 구상이 윤곽이나마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남한 주민들 간의 상속을 비롯한 재산, 신분관계의 분쟁을 처리할 특별법원을 설치한다는 따위의 내용이 개헌안에 들어감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북한 지역의 주민들도 통일을 전후하여 존엄하고 고귀한 인격주체로서 취급받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헌법의 차원에서 반드시 언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가 달리 있다. 독일이 의원내각제를 취하지 않고 또 강력하고 세련된 연방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더라면 과연 그렇게 통일이 가능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의문을 맞닥뜨려야 한다. 지금 장기집권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가 동독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 의문이 합리적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정세균 총리는 총리 인준과정에서 헌법 개정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정치권에서도 지금 대체로 개헌의 필요성에 관하여서 의견이 별로 어긋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일 후의 원만한 정치적, 사회적 통합의 그림을 그리는 헌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 통일을 대비한 헌법 개정을 개헌작업의 한가운데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수도 이전의 문제다. 여권에서 지금까지 세종시로 정식으로 수도 이전을 하겠다고 하는 논의가 일어났다. 김태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이번에야말로 이 문제에 결착을 보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런데 수도 이전의 문제를 왜 남북 평화공존이 유지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통일과 결부시키지 않는가? 이상한 일이다.

통일한국에서 세종시를 수도로 하는 것이 타당한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면 수도 이전을 한답시고 많은 관공서의 건물을 새로 짓고 국회의사당 건물이 새로 세종시에 들어설 터인데, 막상 통일된 한국에서 수도를 지금의 서울로 그대로 둔다면 그 엄청난 낭비를 어찌할 것인가? 아마 북한은 통일국가의 수도를 세종시로 두는 것에 대해서 강한 반대를 할 것으로 본다. 그들의 반대를 꼭히 고려해서가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통일한국의 수도가 세종시로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개헌이건 천도건 통일을 생각하자. 통일을 가장 중요한 인자로 고려하며 그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인은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이가 정치현장의 선두에 서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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