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지 관할국 한국에서 수사해야" vs "법원 체면 깎일까봐 사법정의 저버려"

[법률방송뉴스] '손정우, 이대로 풀어줄 것인가' 국회 토론회 얘기 계속해 보겠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했던 손정우에 대해 미국 사법당국은 미국에서 처벌받게 하겠다며 우리 정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국내에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사법주권'을 이유로 미국 송환을 불허했습니다.

이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국회 토론회에선 어떤 말들이 나왔을까요. 장한지 기자가 송환 불허 사유를 자세히 뜯어봤습니다.

[리포트]

서울고등법원이 작성한 미국 사법당국의 손정우 범죄인 인도 청구에 대한 결정문입니다.

"주문, 범죄인을 청구국에 인도하지 아니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겁니다. 

결정문 소결론을 보면 "국경을 넘어서 익명성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국제적 성격의 성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의 필요성과 아동 성착취 범죄 및 국제자금세탁 척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고려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범죄인을 청구국으로 인도하는 것으로만 결론이 일원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혀 있습니다. 

결정문은 이어 "네트워크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 사건 인도범죄는 범죄지 관할국이 체약 당사국 중 어느 하나도 일도양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범죄인을 인도하지 않는 것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관련 범죄의 예방과 억제라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에 상당한 이익이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범죄인을 청구국에 인도하지 않는 것은 이 사건 조약에 의하여 주어진 합리적인 재량에 따른 판단이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말이 길고 어려운데, 요약하면 아동 성착취물 범죄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그게 꼭 손정우를 미국에 보내 처벌받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 판단입니다.

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크게 4가지 논리구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먼저 '범죄지 관할국' 관련한 판단입니다.

법원은 "범죄인의 수사와 재판, 형의 집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국가가 통상 범죄지 관할국이라는 점에서 범죄인을 범죄지 관할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부합하고, 그것이 범죄인 인도제도의 취지"라고 전제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손정우 범죄의 범죄지와 관할국이 어디냐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와 관련 법원은 "범죄지와 관련한 이른바 '네트워크 기반 범죄'의 특성상 이 사건은 사이트 회원의 국적이나 소재지 등과 관련 없이 네트워크가 연결된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범죄"라면서 "미국은 범죄지 관여국"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인들이 손정우 사이트에 가입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내려받고, 손정우가 거래한 암호화폐 거래소 본사가 일부 미국에 있다 해도, 어디까지나 범죄가 행해진 범죄지는 한국이고 따라서 관할국도 한국이라는 것이 법원 판단입니다.

이에 재판부는 "손정우가 인도되면 현 단계에서 한국에서의 수사가 미연의 상태로 마무리되거나 지장이 생길 위험이 있으므로 관련자 수사와 합당한 처벌을 위해서는 손정우에 대한 신병을 한국이 확보해 수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재판부는 나아가 "국제적으로 행해진 아동 성적 착취와 학대 및 자금세탁 방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관련 수사도 손정우를 인도하지 않아도 국제적 협력과 공조를 통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리하면 재판부가 이번 사안을 '사법주권'의 프레임으로 인식해 손정우가 한국 국민이고, 우리나라에 범죄지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겁니다.

이와 관련 손정우에 대한 추가 처벌이 가능하느냐를 떠나서 오늘 국회 토론회에선 "사법주권을 지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법정의는 확실히 죽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진경 '십대인권센터' 대표는 "재판부가 희대의 성범죄자 손정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을 리는 만무하다"면서도 "대한민국 법원이 지키고자 한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닌 대한민국 법원의 체면이나 자존심 아니었냐"고 쏘아부쳤습니다.

한국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무색하게 미국 법원에서 죄질에 합당한 중형이 선고된다면, 우리 법원의 체면이 깎이고 비판과 비아냥이 쏟아질까봐 아예 일부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것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그 이면엔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도 또 우리 법원은 '사법주권' 운운하며 송환을 불허할 것이냐는 우려 섞인 의심이 들어 있습니다.

역시 토론자로 참석한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도 "재판부가 심지어 이런 범죄의 '발본색원'을 위하여 손정우 인도를 불허한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범죄를 저지르면 결국에는 처벌된다는 결과"라고 재판부의 송환 불허 결정을 꼬집었습니다.

오선희 변호사는 그러면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의 재발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손정우에게 1년 6월의 징역을 선고한 사법부는 송환 불허로 마지막 기대와 신뢰마저 저버렸다"고 법원 결정을 거듭 질타했습니다.

앞서 지난 6일 서울고법에서 손정우 미국 인도 불허 결정이 내려지자 미국 법무부와 연방검찰은 즉각 이례적으로 실망의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동 성착취 범죄자 중 한 명에 대한 한국 법원의 인도 거부에 실망했다"는 것이 미국 법무부의 언론 인터뷰입니다.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강영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관 후보로 천거된 바 있습니다.

청와대 게시판엔 강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는데, 올라온 당일 10시간 만에 20만명 넘게 동참했습니다. 

손정우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은 주권국가인 한국이 사법주권의 양도 내지 훼손과, 사법정의와 '구제적 정의' 실현 사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국민 일반의 법감정과 법원 판단의 괴리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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