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수 건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황도수 건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2017년 촛불혁명은 태블릿PC가 정치인의 거짓말을 들춰내면서 시작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혁명 완성의 사명을 약속하고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지금, 의혹에 싸인 조국 전 장관과 윤미향 국회의원을 끌어안고 가고 있다. 두 사건의 핵심 쟁점은 ‘정치인의 거짓말’이다.

조국은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 임명 2개월 뒤에 가족들 돈 10억여원을 사모펀드에 넣었다는 의혹을, 윤미향은 정대협·정의연 대표로 있을 당시 전체 45억원 중 37억원의 회계를 누락하는 등 기부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 의혹에 대해서, 조국은 "사모펀드가 뭔지도 몰랐다"라고, 윤미향은 "단순한 회계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다. 의혹과 해명의 괴리는 정치인의 거짓말과 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정치에서 기만, 고의적 거짓 그리고 공공연한 거짓말은 역사 이래로 우리와 함께했다고 말한다. 거짓말하는 그들은 미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만큼, 또한 과거(사실)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거짓말을 위해 그럴듯한 이론, 가설들을 설계한다. 과거의 사실을 이론에 맞추고, 이론에 맞지 않는 사실은 제거한다. 종종, 그 거짓말은 그럴듯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듣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정치인들은 사실 앞에서 무너진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국민은 주권자이다. 국민은 국가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자이다. 정치인의 거짓과 사실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판단하는 주체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헌법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 현행 법질서에서 국민이 가진 결정권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선거권이다. 4년, 5년에 한 번씩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국회의원이 될지를 결정한다. 둘째는, 혁명 권력이다. 3년 전에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나머지 모든 결정은 공무원들의 몫이다. 소위 간접민주제이다. 간접민주제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좋은 결정을 해달라고 읍소하고, 청원하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뿐이다.

조국과 윤미향 문제는, 이런 국민의 지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대비해서 잘 보여준다. 국민 여론의 힘이 무엇인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조국은 여론에 떠밀려서 일단 사표를 제출했다. 이런 경우 국민은 조국에 대한 사법적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윤미향은 의혹 속에서 공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경우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윤미향이 생각하듯이, 국민은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결정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사법절차는 공정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준수해야 하므로, 그 결정시간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1~2년은 보통이고, 국회의원 임기 4년이 넘을 수도 있다. 그동안 국민은 의혹 속에 있는 공무원이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그때마다 제기되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감정을 상해야 하는가? 국민은 실질적인 주권자인가? 단순한 정치 들러리인가?

물론 의혹이 제기된 공무원이 모두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쟁점은 그 거취 여부 결정에 대해서 국민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가이다. 이 부분에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점은, 사법적 판단과 공무원 거취 여부 판단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먼저 판단 대상이 다르다. 사법은 처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고, 정치는 공직의 계속 여부를 판단한다. 판단 기준도 다르다.

사법은 형법 위반 여부가 기준이다. 하지만 정치는 법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당사자가 공직에 적합한가, 국민이 그 공직자를 신뢰하느냐의 문제이다. 공무원의 거취 문제를 사법적 결정이 있을 때까지 보류한다는 이론은 있을 수 없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런 데 사용하는 이론이 아니다.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징계 요구, 형사 기소, 수사 진행 등으로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자에 대해서 직위해제 제도가 공무원법에 규정된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우리의 현행 질서는 국민의 주권 행사에 공백이 있음이 분명하다. 국민이 들러리로 주저앉아 마냥 기다려야 하는 무력(無力)의 시간, 주권자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한 시간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직접민주제 도입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된다. 국민은 필요한 경우, 언제든 공직자의 지위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소환제다. 국민은 필요한 경우, 언제든 직접 법률을 만들거나, 헌법을 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투표제다.

공무원들은 국민의 주권 행사를 보조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이 모든 일에 주권을 행사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한 경우 국민은 언제든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결정하기를 거부하거나 주저할 때, 국민은 주권자로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끼리의 불필요한 논쟁을 보면서 주권자들이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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