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원 딸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연금까지 챙긴 생모
유족들 "단 한 번도 가족들 만나지 않고"... 양육비 청구 소송 제기
법원 "생모는 양육비 7천700만원 지급하라"... 유족들 손 들어줘

▲신새아 앵커= 32년 동안 남으로 지내던 생모가 딸이 사망한 이후 유족급여를 받기 위해 나타난 사건이 화제가 됐습니다. 두 딸을 어렵게 키운 아버지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최근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윤수경 변호사의 이슈 속 법과 생활'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간단하게 사건 개요를 한 번 짚고 넘어갈까요.

▲윤수경 변호사=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 등 수천만원을 챙긴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의 친모가 법원 판결에 따라 양육비 7천700만원을 되돌려주게 됐습니다.

소방구조대원 강씨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지난해 1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강씨는 수백 건의 구조과정에서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앓았으며 충동조절 어려움과 인지기능 저하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방관 휴직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근무 중 목격한 사고 장면이 반복해 떠오르는 증상으로 증세가 더 악화됐습니다.

숨진 강씨에게는 '순직'이 인정돼 공무원연금공단이 강씨 아버지에게 유족급여 등 8천만원가량을 지급했는데, 생모인 A(65)씨가 32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 유족급여와 강씨 퇴직금 등 약 8천만원을 수령해 갔습니다. A씨는 사망할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원도 받게 됐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강씨의 아버지는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A씨를 상대로 양육비 1억8천95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혼한 뒤 30년 넘게 자녀를 돌보지 않던 생모가 딸이 숨지자 유족급여를 타 간 건데, 두 딸을 어렵게 키운 아버지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생모가 가져간 돈과 비슷한 액수의 밀린 양육비를 내놓으라고 판결했습니다.

▲앵커= 유족급여가 아닌 일단 지급해야 할 양육비를 달라는 소송이 된 거네요. 법원에서 양측 주장은 어땠나요.

▲윤수경 변호사= 강씨 어머니는 이혼 뒤 딸들에게 한 번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강씨 아버지는 전 부인이 이제 와서 딸의 순직 보상금 등을 받는 게 부당하다며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청구금액은 이혼 시점인 1988년부터 두 딸들이 성년이 되는 해까지 서울가정법원 양육비 기준표에 따른 양육비를 계산한 비용입니다.

강씨 가족은 "이혼 이후 32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족들과 만나지 않았고 심지어 둘째딸의 장례식장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은 A씨가 유족급여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A씨는 "그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하며 항상 자식들을 생각하고 있었다"며 "전 남편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탓에 대신 친정어머니에게 딸들의 안위를 살펴줄 것을 부탁했었다"고 항변했습니다.

큰딸은 이를 전혀 근거없는 말이라고 일축하면서 "증거이면서 증인인 사람은 저고 실제로 저희는 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같은 걸로 고발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버지께서 하도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셔서 아버지 뜻을 따라 더 이상 (고발)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습니다.

또한 A씨가 법정에서 전 남편이 아이들을 학대했다고 주장하자 큰딸은 "아버지는 A씨가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았고 저와 동생은 폭행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서 A씨 주장을 일축하고 "아버지를 악마처럼 표현하는 생모가 무섭다"고도 진술했습니다.

▲앵커= 1심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궁금합니다. 재판부는 누구의 손을 들어줬나요.

▲윤수경 변호사= 법원은 강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A씨가 전 남편에게 7천70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재판부는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에 드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공동 책임"이라고 전제했습니다.

그러면서 "양육이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목적 내지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상대방(생모)은 두 딸의 어머니로서 청구인(강씨 가족)이 딸들을 양육하기 시작한 1988년 3월 29일부터 딸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두 딸에 관한 과거 양육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강씨 아버지는 협의 이혼 당시 각각 5살, 2살이던 두 딸을 배추 장사, 수박 장사를 하면서 30년 넘게 홀로 키웠다고 합니다.

1심 재판부는 "순직한 자녀의 순직 유족보상금 등과 순직 유족연금을 지급받게 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순직 소방관 강씨는 '전북판 구하라'라고 불리며 작년 11월 사망했던 연예인 구하라씨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윤수경 변호사= 구하라 사건은 구씨의 사망 소식을 들은 생모가 이혼 후 연락두절한 지 20년 만에 구씨의 유산 중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에 구씨의 오빠는 양육 의무를 저버린 생모가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며 생모에 대한 '상속재산분할심판'을 법원에 청구해 놓은 상태인데, 재판은 오는 7월로 잡혔습니다.

이른바 '구하라법'을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하라씨 오빠나, 응급대원 아버지·언니가 돈을 가져간 또 다른 가족을 상대로 소송해야 한다"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에겐 2차 가해와도 같은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구하라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윤수경 변호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육 의무를 게을리한 부모가 숨진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한 이른바 '구하라법'을 다시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구하라법은 쉽게 말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자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민법상 상속결격사유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라는 항목을 추가하자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법에서는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가족을 살해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자',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한 자' 등 상속결격사유에 속하여 행한 자만 상속자격을 잃습니다. 그 외의 경우엔 상속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양육의무를 지키지 않은 부모는 자식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과 다르게,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상황입니다.

구하라법은 입법청원에 10만 명이 동의할 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법안이었지만 지난 4월 딱 한 차례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에 올라 '계속심사' 처리됐고, 한 달 뒤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습니다.

숨진 강씨의 언니는 구하라법에 대해 "양육한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위해서 이 법 개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나라에서 개정을 안 하면 계속해서 억울한 국민이 나오고 또 저희처럼 당연한 권리인데도 불구하고 힘든 싸움을 해야 일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그렇네요. 20대 국회 종료로 자동폐기된 구하라법이 현재 21대 국회가 들어서자마자 재발의됐는데, 어떻게 될지 관심 갖고 지켜봐야겠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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