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사상 초유 일이라 어쩔 수 없어”... 거래소 “관련 규정 없어 규율하기 곤란”

[법률방송뉴스] 삼성자산운용이 지난 달 23일 새벽 투자자들에게 사전 고지 없이 원유선물 상장지수펀드의 자산운용방식을 바꾸면서 촉발된 갈등이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성난 투자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집단소송을 예고한 가운데,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 해당 사건을 신고하는 한편 경찰에 고발까지 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삼성자산측은 “23일 조치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긴급하게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 고지할 사항은 아니며, KODEX WTI원유 선물 ETF의 투자규약서에 따라 운용대상 자산을 적절히 변경한 이상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사상초유의 원유선물 급락으로 빚어진 이번 사태 대처와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삼성자산과 투자자간 갈등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이례적 운용방식 변경... 이틀간 변경 자산가치 시스템 반영 안 되기도

지난 달 23일 삼성자산은 KODEX 서부텍사스원유 선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운용방식을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해당 펀드는 S&P GSCI Crude Oil Index Excess Return을 기초지수로 삼고 있는 펀드로 월말에 차기 월물로 교체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새벽 삼성자산운용은 80% 가까이 편입하던 6월물 비중을 30%대 초반으로 대폭 줄였고, 차기 월물이 아닌 7,8,9월물로 채워넣었다. 통상의 교체기간도, 교체시간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결정이다.

일단 삼성자산이 문제가 된 KODEX 서부텍사스원유 선물 ETF의 운용방식을 임의로 변경한 것은 최근 유가 급락 사태 때문이다. 지난 2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 가격은 배럴당 -37.63달러까지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미 채굴한 원유를 저장할 장소가 없고 보유 비용도 감당할 수 없게 된 원유 판매업체들이 오히려 '돈을 더 얹어줄 테니 원유를 가져가라'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거래가 시장에서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원유 선물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자 삼성자산은 펀드 운용시간이 끝난 지난 23일 새벽 급작스럽게 해당 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6월분 서부텍사스원유 선물 비중을 79.2%에서 32.9%로 낮추고 대신 7, 8, 9월물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을 채워넣었다.

삼성자산 입장에선 당시 마이너스로 가격이 하락할 위험이 컸던 6월분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을 처분해 급한 불은 끄고 이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삼성자산의 조치 직후 '원유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고 본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면서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6월물 가격이 크게 올랐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6월물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으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삼성자산이 임의로 투자종목을 최저점에서 교체해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반등에 따른 수익은 고스란히 날리게 된 것이다.

더구나 해당 펀드는 ETF였다. ETF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KOSPI 200과 같은 시장지수의 수익률을 그대로 쫓아가도록 구성된 인덱스 펀드다. 상품 자체가 기준이 되는 기초지수를 따라가도록 설계가 돼 있어 운용의 폭이 제한적인 이른바 ‘패시브 펀드’다.

운용 재량이 큰 ‘액티브 펀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식의 운용방식 변경은 아주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게다가 워낙 이례적인 일이다보니 시스템이 이같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상장 펀드의 경우 해당 상품의 이론적인 실제가치가 투자자들에게 제공되고, 투자자들이 이를 보고 매매호가를 내는데, 이것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보니 투자자들은 23~24 양일간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실시간순자산가치(iNAV)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상에서 보고 거래하게 된 것이다.

이에 지난 달 22일 6월물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투자한 투자자들과, 23~24일 고평가된 iNAV를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삼성자산측에 거세게 항의하는 상태다.

투자자들은 “삼성자산이 운용방법을 임의로 바꿔 투자 손실을 봤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해당 조치를 사전에 공시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자산측은 “자산운용사가 투자 방향에 대해 사전 공시할 경우 추격매매나 선행매매가 나타나게 된다”며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사전에 매매 방향을 공시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다”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전고지 하라는 규정 없다” vs “상도의상 마땅히 했어야”

하지만 투자자들은 삼성측의 이러한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시장상황에 따라 기존 운용방식에서 벗어나는 긴급조치를 취하는 경우라도 그 이유와 대강의 방향을 고지해야 예측가능성을 갖고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자산의 해명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6월물 WTI 비중을 줄인 미국 최대 원유 ETF인 USO는 27일 6월물을 나흘에 걸쳐 모두 매도하겠다고 사전 공시했고, 삼성자산 홍콩법인은 지난 21일 종목 교체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과 시장상황, 추가 발생비용 등을 상세하게 고지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유가 급락으로 인한 마이너스 유가가 워낙 사상 초유의 일이라, 이런 상황을 대비한 관련 규정이나 규율이 전혀 없어 분란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삼성자산과 투자자들 간의 갈등 해결될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투자자들은 "삼성자산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소송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다.

◆ 금감원 “사상 초유 일이라 어쩔 수 없어”... 거래소 “관련 규정이 없어 규율하기 곤란”

이렇듯 원유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지만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사실상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향후 패시브 펀드에서의 운용방식 변경을 사전 공시 의무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모든 신고의무를 나열할 수는 없지 않냐”며 “워낙 사상초유의 일이라 관련 규정이 없다. 규정이 없어서 규율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금융감독원 또한 “투자설명서에 사전 신고의무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 이상 사전에 신고했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삼성자산측 해명에 무게를 실어줬다.

금감원은 실시간순자산가치 표기 오류에 대해서도 사상 초유의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시스템적으로 최대한 빨리 조치를 한 상황이었다.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에 대한 공시도 이루어졌다”며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전고지를 둘러싼 분쟁 등은 당사자간 계약서에 따라 해결할 일이라는 입장이고, 그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금감원 차원의 조치나 가이드라인 설정 등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투자자들로부터 두 기관 모두 투자자 보호 보다는 삼성자산만 두둔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취지는 이해하나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다”며 삼성의 태도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상적인 운영 절차와 전혀 달랐던 만큼 투자자에게 사전에 고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마이너스로 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펀드가 청산될 수도 있는 위기를 피하기 위해 삼성자산이 긴급조치를 취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그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에서 삼성자산이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펀드가 상장된 이상 주요 변동 사항에 대해서는 일일이 공시하는게 맞다”며 “워낙 초유의 사태라 어느 누구도 대비하기 힘들었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관련 법규나 제도가 좀 더 정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전직 운용업계 종사자는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를 대하면서 이런 예외적인 경우을 규율하는 내용이 없으니 당사자간 알아서 해결하라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삼성자산의 KODEX 서부텐사스원유 선물 ETF1조원대 규모의 펀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몇백억원대의 소규모 펀드로 안정적으로 운영됐지만, 최근 유가가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고위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달 사이 큰 차액을 노리고 자본이 대거 몰렸다는 분석이다.

금감원과 거래소가 사실상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삼성자산을 고발하고 대규모 민사소송까지 예고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은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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