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원유 가격 폭락하자 사전 고지도 없이... "투자자 보호" vs "회사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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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삼성자산운용이 투자자들에게 사전 고지 없이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상장지수펀드(ETF) 구성종목을 임의로 변경해 논란이 일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였다"는 게 삼성자산의 해명이지만 투자자들은 “상황을 살펴보면 삼성자산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사건은 진실 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일부 투자자들은 “계약 위반”이라며 집단소송을 제기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 “펀드 구성종목 임의로 바꾼 것은 극히 이례적”

일단 삼성자산이 ETF 구성종목을 임의로 바꾼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여서 투자자들이 발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해당 상품은 상품설명서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원유 선물가격을 기반으로 산출되는 기초지수인 S&P GSCI Crude Oil Index Excess Return의 수익률을 따라가는 것이 목표인 ETF다. ETF란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KOSPI 200과 같은 시장지수의 수익률을 그대로 쫓아가도록 구성된 인덱스 펀드다. 상품 자체가 기준이 되는 기초지수를 따라가도록 설계가 돼 있는 만큼 운용의 폭도 제한적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상품설명서 목표에 따르면 선물가격 등락을 삼성자산이 신경쓸 이유가 없고 수익률을 기초지수 이상으로 내줄 필요도 사실상 없다. "투자자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개입했다"는 삼성자산의 해명이 석연치 않게 들리는 이유다.

일단 삼성자산이 문제가 된 KODEX 서부텍사스원유 선물 ETF의 운용방식을 임의로 변경한 것은 최근 유가 급락 사태 때문이다. 지난 2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 가격은 배럴당 -37.63달러까지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미 채굴한 원유를 저장할 장소가 없고 보유 비용도 감당할 수 없게 된 원유 판매업체들이 오히려 '돈을 더 얹어줄 테니 원유를 가져가라'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거래가 시장에서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원유 선물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자 삼성자산은 펀드 운용시간이 끝난 지난 22일 새벽 급작스럽게 해당 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6월분 서부텍사스원유 선물 비중을 79.2%에서 32.9%로 낮추고 대신 7, 8, 9월물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을 채워넣었다.

삼성자산 입장에선 당시 마이너스로 가격이 하락할 위험이 컸던 6월분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을 처분해 급한 불은 끄고 이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삼성자산의 조치 직후 '원유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고 본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면서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6월물 가격이 크게 올랐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6월물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으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삼성자산이 임의로 투자종목을 최저점에서 교체해 손실은 손실대로 보고 반등에 따른 수익은 고스란히 날리게 된 것이다.

"원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ETF 순자산 가치가 0이 되면, 투자자들이 전액 원금 손실을 보게 되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긴급하게 조치를 취했다"는 삼성자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투자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 “선물 구성종목 임의 변경은 투자자 아닌 삼성 위한 것”

투자자들의 이런 반발에는 "삼성자산이 선물 구성종목을 임의로 바꾼 것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삼성자산의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단 투자자들은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을 기반으로 하는 ‘펀드’를 산 것이고, 펀드를 운영한 삼성자산은 ‘펀드’가 아닌 서부텍사스원유 ‘선물’ 자체를 구매한 것이다. 삼성자산 예측처럼 6월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이 마이너스 거래에서 바닥을 모르고 더 떨어졌다면 최악의 경우 투자자들은 투자한 펀드 원금만 날리면 되지만 ‘선물’을 매입한 삼성자산의 손실은 무한정으로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삼성자산이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선물 구성종목을 임의로 바꿔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는주장이다. 당시 종목 교체기간도 아니었고, 영업시간도 아니었으며, 교체 비용이 높게 발생하는 종목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자산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는 카페지기는 법률방송과의 통화에서 "모든 투자 위험은 투자자가 지는 것“이라며 "삼성자산의 해명은 핑계"라고 잘라 말했다.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까지 염두에 두고 투자한다.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큰 손실을 보는 주체는 삼성자산이다. 즉 이번 조치는 오로지 삼성자산을 위한 행동"이라는 게 이 카페지기의 주장이다.

그는 "내 입장에서는 6월물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매수했는데 가격이 상승해 수익률을 확인해보니 종목 교체기간도 아니었고 업무시간도 아니었는데 종목이 무단으로 바뀌어 있었다"며 "자사 손해를 막기 위해 종목을 바꾼 삼성자산이 사과는커녕 투자자 보호를 위한 차원이었다고 우겨서 화가 난다"고 삼성자산을 강하게 비판했다.  

◆ 1주일 새 7천여명 소송 참여 의사... "삼성자산 처벌" 국민청원도

지난 23일 개설된 해당 카페에는 불과 1주일 사이에 7천명이 넘는 투자자들이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투자자에 대한 고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삼성자산을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린 상태다.

해당 카페에 가입한 또 다른 투자자는 "근월물인 6월물보다는 원월물인 7, 8, 9월물의 교체 수수료가 특히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6월물이 급락해 교체 수수료가 치솟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교체해 투자수익이 더욱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펀드의 투자계약서 유의사항 11항에는 '만기 도래시 차기 월물로 종목교체되는 펀드'라고 명시돼 있다. 이들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 삼성자산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는 한편 이런 내용을 공론화하기 위한 유튜브 제작 등도 준비중이다.

삼성자산은 이에 대해 "23일 오전 홈페이지와 펀드거래 사이트에 즉시 해당 사항을 공시했다"며 "계약서를 보면 차기 월물 외 타 월물로 종목 교체를 하지 말라는 규정이 없다"고 해명했다. 투자자들에게 미리 고지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삼성자산은 "종목 구성을 바꾼다는 사항은 사전에 고지할 수 없다. 해당 정보를 역이용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후에 즉시 고지한 것"이라며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자산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종목을 바꾸는 것 외에 투자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며 ”왜 결국 삼성자산이 가장 손실을 덜 보는 방법으로 조치를 취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삼성자산의 해명을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차기가 아닌 다른 월물로 종목을 교체한 것은 기초자산이 변경된 것"이라며 "중요 내용인만큼 사전에 고지했어야 마땅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펀드 투자계약서 46조에는 주된 투자대상자산 변경시 미리 수익자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취지의 사전고지라도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운용업계 종사자는 "원유펀드를 운용하는 국내 다른 운용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성자산 홍콩법인은 지난 21일 종목 교체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과 시장상황, 추가 발생비용 등을 상세하게 고지했다"며 "이번 조치는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실제로 이번 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사전고지 의무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 변호사는 "'하지 말라는 규정이 없는 한 해도 된다'는 삼성자산의 해명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투자자에 대해 선량한 관리 의무를 다했는지 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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