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 등 개념 모호, 자의적 적용 처벌 가능성" vs "정권 교체 염두에 두고 직권 행사해야"

왼쪽부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명박 전 대통령, 안태근 전 검사장 /법률방송
왼쪽부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명박 전 대통령, 안태근 전 검사장 /법률방송

[법률방송뉴스] 김기춘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불이익을 준 안태근 전 검사장의 공통점은? 바로 '직권남용죄' 기소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원심에서 직권남용 유죄가 선고됐지만 대법원이 "직권남용을 더 자세히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 재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지만 직권남용 혐의 부분은 무죄가 선고됐고,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서 대법원은 서지현 검사에 불이익을 주도록 한 인사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4명의 전현 고위 판사들은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등 과거 정권 실력자들의 '농단' 관련한 수사에 직권남용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직권남용죄에 대한 합리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직권남용죄 자의적 해석 적용 여지... 전 정부 고위공직자 상징적 처벌 이용 위험"

직권남용죄에서 '직권' 등의 개념이 모호하고 직권남용죄 적용이 자의적일 수 있다는 지적은 헌법재판소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형법 제123조에 나오는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직권'이나 '남용' '의무 없는 일' 등 법조문에 적시된 단어부터 모호해 검사나 판사 등 판단자의 자의가 개입하기 쉽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직권남용죄에 규정된 '직권'과 '의무'의 개념이 불명확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직권남용죄 조항에 대해 헌재는 2006년 합헌 결정(2004헌바46)을 내렸지만, 당시 권성 재판관은 "법원의 해석을 통해서도 직권을 남용한다는 의미를 파악해내기 쉽지 않고 의무 없는 일 역시 그 의미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 결국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긴다"는 소수의견을 남겼다.

나아가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직권남용죄 판결문에서 직권남용죄의 자의적 적용과 남용 가능성이 직접 언급되기도 했다.

"정권 교체의 경우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춰내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할 우려가 있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성도 매우 크다"는 것이 헌재의 지적이다.

나아가 결과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지시를 따른 하급자를 무차별 수사·기소하면 국가공무원법상 복종의무가 있는 하급자는 딜레마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이 저해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직권남용죄가 정치보복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법조계의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 "검사가 마음먹기 따라 기소... 명백한 불법 지시 아닌 경우 지시 따른 하급자는 면책해야"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선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 주최로 '직권남용죄 적용한계와 바람직한 적용방안'을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선 전 정권 공직자들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일련의 사건와 관련해 "기관 내부의 지휘관계에 초점을 맞춰 직권남용죄 적용범위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종우 서울변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직권남용죄는 과거에는 적용과 입증이 어려운 사실상 '잠든 범죄'로 인식돼 왔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크게 증가했다"며 "직권남용죄가 정치보복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라는 보호법익이 충분히 관철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심포지엄 개최 취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완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의 '남용'의 해석 기준이 모호해 판단자의 자의가 개입하기 쉽고, '직권'과 '의무'의 개념도 불명확하다"며 "검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피지시권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공범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이에 "명백히 형사처벌 또는 행정처분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피지시권자는 지시권자의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다"며 "이에 따른 경우 피지시권자는 면책된다는 법리를 엄격히 적용해 피지시권자인 공무원의 직무수행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급자 지시 당시 명백한 불법성을 띠고 있는 지시가 아닌 결과적으로 사후에 형사처벌 대상이 된 경우, 명시적으로 불법적인 지시가 아닌 경우에 하급자는 지시를 따를 의무가 있는 만큼 직권남용죄에서 면책을 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 "고위 공직자, 정권 교체 가능성 염두에 두고 직권 사용해야"

직권남용죄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고위 공직자는 정권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직권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오병두 교수(홍익대 법과대학)은 2006년 직권남용죄 위헌 의견을 낸 권성 재판관의 소수의견과 관련해 "직무에 열심인 나머지 초래된 결과라는 인식이 내재돼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민주국가라면 정권의 교체 가능성을 항상 염두해 둬야 한다. 책임정치라는 말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정치적 평가와 함께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하고서 행동해야 한다는 취지이기도 하다"는 것이 오병두 교수의 지적이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지난 2005년 헌재 결정을 언급했다. 당시 헌재는 직권남용죄의 '직권' 등 개념이 모호해 명확성 원칙 등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수의견을 낸 권성 재판관을 포함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파업 등의 쟁의행위는 본질적·필연적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폭행·협박 또는 다른 근로자들에 대한 실력행사 등을 수반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위력에 해당하므로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하며 해당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업무'란 사람이 그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 또는 사업을 뜻한다. 이러한 해석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일반인으로서도 능히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불명확한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헌재 판단이다.

오 교수는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죄에서의 '업무'에 대한 판단이 명확성의 원칙에 비춰 일관된 것일까"라며 "업무방해죄가 합법적인 노조 활동에 대해서도 적용돼 온 전례에 비춰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우 서울변회 회장은 "최근 있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화이트리스트 사건의 선고에서 대법원은 '의무 없는 일'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제시하여 결과적으로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를 제한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 "직권남용 판단 기준을 모호하게 내버려두면 수사와 재판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악순환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직권남용 판단에 대한 법리와 합리적인 기준 마련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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