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수 건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황도수 건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장담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책임질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그 장담에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책임은 그 본질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책임은 의무위반에 대하여 부담하게 되는 불이익 또는 제재이다. 책임이란, 권리주체, 고권주체가 의무위반자를 추궁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국가나 권리자가 의무위반자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책임은 허무한 개념이 된다.

‘의무자가 스스로 책임진다’라는 말이 책임 개념에 걸맞기 위해서는,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질 내용을 결정한 뒤 그것을 스스로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스스로 책임진다’라고 말할 때, 후안무치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치를 잘못한다는 질책을 들었다면, ‘스스로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던 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던 사람은 뻔뻔하게도 더욱 출마에 집착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민은 선거의 ‘권리자’로서, 의원의 책임을 제대로 추궁해야 한다. 그런데 일단 국회의원으로 한번 선출되면, 재선, 3선, 4선 되기가 쉽다. 이는 국민이 책임추궁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이 책임추궁을 게을리하면, 국회의원들은 권리자 국민을 우습게 본다. ‘지역구 관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관리 객체,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말이다. 국정 지도자 자질이 없어도, 지역구에서 눈도장을 자꾸 찍으면 국민이 다시 찍어준다는 것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이다.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주권자이고, 선거권자이다. 국민의 선거권은 그 의무자 국회의원의 책임을 추궁하는 힘이다. 선거권은 국회의원이 청렴 의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할 의무, 지위를 남용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해서는 안 될 의무,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할 의무, 국민에 대하여 책임질 의무를 다했는지를 추궁하는 법적 힘이다.

선거는 현직 국회의원의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투표장에 가서 도장을 누르는 것이 아니다. 투표할 때에, 정치가 불만족스러웠다면, 정당의 실세, 국회의 중진들을 집중적으로 낙선시켜야 한다. 그들이 정치를 그렇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 정도의 정치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 정도 정치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라는 배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들이 선거권리자들을 두려워하고,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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