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피고인들의 행위는 헌법질서 반하는 직권남용에 해당"
"직권남용 성립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일부 심리는 다시 하라"

김기춘(왼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법률방송
김기춘(왼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법률방송

[법률방송뉴스]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81)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4) 전 청와대 정무수석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직권남용 혐의를 대부분 원심 그대로 인정했지만, 일부 혐의에 대한 '심리 미진'이 이유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의 행위는 “민주주의 헌법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직권남용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다만 전체 공소사실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에게 관련자 명단을 제출하게 한 혐의 등 일부에 대해서는 원심의 심리가 미진하다며, 이 부분 유무죄는 서울고법이 다시 관련 법령과 사실관계를 따져 판단하도록 했다.

김 전 실장 등은 박근혜 정부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단체나 예술가 등에 대해 이름과 지원 배제 사유 등을 정리한 문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기초로 정부지원금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실장은 1심에서 지원배제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1급 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가 추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조 전 수석도 1심에서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지원배제에 관여하며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2월 이 사건을 소부 2부에 배당했다가 같은 해 7월 전원합의체로 넘겨 1년 6개월간 심리해왔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의 직원들로 하여금 각 단체의 위원에게 배제 지시를 전달하게 한 행위, 지원배제 대상자에게 불리한 사정을 부각시켜 심의위원에게 전달하게 한 행위 등 11가지 행위에 대해서는 원심대로 “직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각 단체의 직원들로 하여금 각종 명단을 송부하게 한 것,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상황에 대해 보고하게 한 것 2가지 행위에 대해서는 “(직권남용죄의 성립 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원심의 유죄 판단에 법리 오해와 심리 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등의 임직원의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그가 한 일이 의무 없는 일인지는 관계 법령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는 직권남용죄의 '의무'는 '법률상 의무'를 뜻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이어 대법원은 파기환송한 2가지 행위에 대해서는 “종전에도 명단을 송부받고 보고를 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이 사건 행위와 종전의 행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살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는지 판단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심리 판단이 없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날 판단에 따라 서울고법 재심리 후 해당 부분이 무죄 판단될 경우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의 형량은 다소 감경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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