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도매점 영업정보 경쟁 직영점에 넘긴 영업비밀누설 무죄 취지 파기환송

[법률방송뉴스] 주류업체 국순당이 매출이 부진한 도매점들의 거래처 정보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대리점에 넘기는 방법으로 퇴출을 유도했지만 영업비밀누설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이른바 ‘국순당 갑질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린 사건입니다.

배중호(66) 국순당 대표 등은 2008년쯤 백세주 등 주력상품 매출이 줄자 실적이 미흡한 도매점들을 퇴출하기 위한 구조조정 계획을 세워 2009년 2월에서 2010년 3월 1년 남짓 사이 도매점 8곳과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 배 대표 등은 도매점들에 매출 목표를 강제 할당하는가 하면 퇴출 대상에 오른 도매점들에 물량 공급을 줄이고 도매점 전산시스템 접근을 차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은 또 구조조정 계획에 주도적으로 반발하는 도매점들의 거래처와 매출에 관한 정보를 경쟁 관계인 자사 직영점에 넘기거나 거래처 반품을 유도한 혐의 등도 함께 받았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배중호 대표와 전·현 간부 2명 그리고 국순당 법인입니다.

적용된 혐의는 업무방해죄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영업비밀누설입니다. 
      
1·2심에선 업무방해 혐의가 주로 쟁점이 됐습니다.

1심은 국순당이 도매점들에 매출 목표를 강제 할당하고 이의 달성을 채근한 자체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업무방해와 영업비밀누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배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전·현 간부 2명에 대해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국순당 법인에 대해선 “영업비밀을 부정사용해 얻은 이득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벌금 5천만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은 하지만 일방적 매출목표 설정 및 독려가 업무방해죄 성립에 필요한 위력의 행사로 보기 어렵다며 이 부분 업무방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2심은 다만 전산 차단 등 업무방해 혐의와 영업비밀누설은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해 배 대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전·현 간부 2명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각각 감형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오늘 영업비밀누설 혐의도 무죄로 판결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도매점장들은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입력한 거래처 정보 등에 국순당과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한 적은 없다”며 “해당 정보를 비밀로 유지 관리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어 "국순당이나 배중호 대표 등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도매점들의 정보를 경쟁 업체에 공개해선 안 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해당 정보에 대한 비밀관리성을 추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이에 “도매점장들이 전산시스템 관리를 국순당에 사실상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영업비밀누설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영업비밀누설죄가 성립하려면 해당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돼야 하는데 국순당이 자사 직영점들에 넘긴 도매점 거래처 영업정보는 그런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업무방해 일부 혐의가 2심에서 무죄로 난 데 이어 대법원이 오늘 영업비밀누설 혐의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한 만큼 배중호 대표 등에 대한 형량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도의적 비난의 대상이 될지언정 ‘갑질’이 다 형사범죄는 아니겠지만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도매점들을 퇴출하기 위한 의도로 영업정보를 경쟁 직영점에 넘겨줬지만 영업비밀누설 범죄는 아니다는 판결. 법리가 그렇다는 게 대법원 판결입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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